얼마 전 젊은 환자가 교통사고로 뇌사자가 되어 장기적출을 하게 되었다. 우리병원에 등록한 환자들이 간과 췌장을 기증 받기로 선정되어 나는 팀원들과 함께 그분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간을 적출하는 팀에서 뇌사자 수술을 개복하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수술 준비가 다 되고 나서는 시작하기 전에 뇌사자를 위해 추도하는 시간을 잠시 가진다. 한국 장기기증원에서 나온 코디네이터 선생님들이 준비한 추모사를 하는 동안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의료진들이 묵념한다.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누군가의 그리움인 고 OOO님이 이 땅에 사랑의 꽃씨를 뿌리고 떠나십니다. 고인이 주신 나눔의 사랑이 더욱 널리 퍼지게 해주시고, 가시는 길에 평안과 안식이 있으시길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러나 그날은 익숙히 들어오던 추모사가 아니었다.

“오늘은 OO군의 어머니께서 직접 쓰신 추도사를 낭독하겠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또 뇌부종으로 뇌사의 가능성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희망을 놓지 못했습니다. 이제 제 앞에는 아이의 사망진단서가 놓여있습니다. 내일 아침 아이의 장기는 여덟 분의 긴 소망의 답변이 되기 위해 수술을 받게됩니다. 수술실을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전 어리석은 제 희망을 놓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여덟 분의 소망이 꼭 답변 받기를 기도하려고 합니다. X월 X일 오전 10시에 수술이 시작됩니다. 제 아이와 그 여덟 분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길 깊이 소망합니다.”

한 아이의 어머니의 절절한 기도를 읽은 뒤 우리는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해야만 했다. 젊은 환자였기에 모든 장기의 상태는 매우 좋았다. 간과 췌장을 무사히 적출한 뒤, 장기가 체외에 있으면서 피가 통하지 않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 빨리 우리 병원으로 돌아와서 간과 췌장을 이식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간이식과 췌장이식은 아무런 문제 없이 평소보다 더 빨리 잘 끝났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장기기증원의 한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그 어머니가 전해달라는 편지가 있습니다. 선생님. 절실히 소망하건대 장기를 기증 받으시는 환자분들 모두 건강을 찾길 바라며 오랜시간 그분들 곁에서 그분들을 지키고자 하셨던 가족들, 의료진들 그리고 관계자분들의 마음이 평안해지시길 앞으로도 계속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이야기하던 저의 아이는 사랑을 실천하고 떠났습니다. 그렇게 실천할 수 있어 기쁘게 감사하며 떠났을 겁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 동안 1000건이 넘는 장기이식에 참여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뇌사자로부터 췌장을 이식 받은 젊은 청년이 퇴원하는 날, 우리 병원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선생님들은 그에게 그 어머니께서 적어놓으신 편지를 액자로 만들어 전달해주었다.

얼마 전에는 우리 병원에 같이 근무하는 흉부외과 교수님의 동생분이 불의의 사고로 뇌사자가 되어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교수님은 스스로 폐이식을 하던 분이었기에, 동생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교수님께서는 동생의 일부분이 이 세상에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며.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어떤 이는 사랑을 남긴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부활이라는 것의 참 의미를 넌지시 깨닫는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고 편지의 내용을 공개합니다.)

양산부산대병원 외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