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교대·부산대 통합 논란을 지켜보며 귓가를 맴도는 말이 있다. 바로 ‘초등교육의 전문성’이라는 말이다. 초등교육은 여느 분야 못지않게 고유한 전문성을 지니므로 전문직 종사자인 초등교원은 양성 과정에서나 직업생활에서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20년 이상 초등교원을 양성해온 입장에서 흔쾌히 동의하기가 힘들다. 초등교육의 특별함은 고유의 전문성이 아니라 ‘전문성’을 넘어서는 고유의 가치에 있기 때문이다.

교대생이 일반 대학생보다 훨씬 과중한 수업시수를 감당해야 하고 힘든 훈련 과정을 거치는 것은 맞다. 만일 교육의 양과 강도가 남달라서 타 대학생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전문성을 지닌다면 그러한 전문성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초등교원에게 정작 필요한 자질은 기능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유능함에 좋은 인성까지 갖추었다고 해도 충분한 자격 조건을 구비한 것은 아니다. 교사가 ‘전문가’로 머무는 한, 참된 의미의 ‘선생님’이 되기는 멀었다.

특수목적대학인 교대를 흔히 사관학교에 견주기도 한다. 이것은 정말로 그릇된 유추이다. 사관학교는 정예 장교라는 특정한 기능인을 양성하는 학교다. (직업)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단 하나의 목표에 충실해야 한다. 만약 사회적 현실을 못마땅하게 여긴 군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한다면 그것은 반역일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직분에만 충실한 군인이 아름답다. 기능인은 외골수가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은 법조인이나 국가공무원, 의료인 등 여타 전문직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러나 교직은 다르다. 교원은 외골수여서는 곤란하다. 일하는 대상이 여타 전문직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교원은 자라나는 어린이를 위해 일한다. ‘선생님’은 ‘교수님’이나 ‘박사님’, 혹은 ‘총장님’이나 ‘부장님’과는 질적으로 다른 호칭이다. 그것은 직종이나 지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분을 향한 경어이다. 적어도 원래의 의미는 그렇다.

선생님이 주시는 가르침이란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깨우침이다. 즉, 당신께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모습 전체를 통해 우리를 일깨워주시는 것이기에 남달리 고마운 것이다. 학교보다 학원이 중요해진 요즘은 ‘은사(恩師)’라는 호칭은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우리들의 ‘은사’께서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신다면 동일한 행동을 군인이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총체적인 인간됨이고 정치적 판단도 마땅히 그 일부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결코 외골수의 기능인이 아니기에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까지도 책임질 줄 알며, 또 그럴 수 있다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교원의 독립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초등교육의 전문성’이란 구호는 교육대학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호소하는 절규처럼 들린다. 그것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교사의 ‘교수법’으로 기능화하고 초등교육을 일개 전문직으로 축소시킨다. 앞으로 예비 초등교사들에게 선생님다운 도량과 자질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현재의 협소한 교원 양성 체제를 과감히 혁신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일반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종합대학에서 폭넓은 ‘기초 교양’을 쌓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교육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초등교원은 교사이기 이전에 정치적인 시민이 되어야 한다. 교대는 결코 사관학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시민에게 문호를 활짝 연 개방대학이 되는 편이 낫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에 좀 더 다가서는 길일 터이니 말이다.

고전적 문화사 서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의 저자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노년기에 이르러 대가의 원숙함이 우러나오는 ‘세계사적 성찰’을 집필했다. 평생의 학문 연구를 결산하는 이 저작에서 그는 참된 역사가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는 의외의 주장을 펼쳤다. 때로는 아름답기도, 때로는 처절하기도 한 역사의 변화무쌍한 흐름은 전문가의 고정된 시야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노(老)역사가가 보기에 역사 이야기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얄팍한 지식이나 단발적인 효용이 아니다. 역사를 공부한다고 우리는 별로 똑똑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위대한 역사 서술은 행운과 불행 사이에서 노력하고 좌절했던 옛 사람들의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갖가지 경험들을 전해줌으로써 편협한 울타리에 안주하던 우리를 성숙시킨다. 우리를 영재나 특기자가 아니라 주어진 운명과 씨름하며 난관을 헤쳐 나갈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북돋워준다는 점에서 일선 학교 선생님은 위대한 역사가에 못지 않다. 초등교사와 교대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