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출간된 칸딘스키의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책의 제목에서 연상되어 ‘예술에 있어서 공공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칸딘스키의 이 책은 미술학도들에겐 이미 교과서 같은 고전이 되었지만 예술의 본질을 논하는 것은 여전히 난해하다. 예술이 인간 내면의 필연적인 어떤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며 보편적 예술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라는데, 어렵다.
그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인간이 아니던가! 이 우주 어디에도 같은 인간이 하나도 없으니 예술은 쉬운 작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공공재가 되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예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예술과 공공, 함께 잘 나아가고 있는 걸까.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하는 예술과 개개인의 욕망들이 모여 합쳐져 표현되는 공공, 과연 예술에 있어서 공공적인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엄청난 숫자들과 함께 정말 놀라운 뉴스가 들려왔다.
고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 점, 감정가 2조~3조 원, 국보급 문화재 및 근현대 미술품 국가에 기증, 시가로는 10조 원이 넘을 거라고 한다. 기증되는 작품들은 주로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고 지역의 몇몇 미술관들도 기증받게 된다고 한다. 국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두 기관의 한 해 작품구입비용이 80억 원 정도라고 하는데 감정가 2조~3조 원의 작품들을 구입하려면 300년 넘는 작품구입 예산에 해당하는 기증 작품들이 되는 건가. 값을 매기는 것이 의미가 없는 작품들로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이 실제로 보관되어 있다. 그것도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내 미술계는 들썩이고 대통령께서는 특별관 설치를 검토하라고 하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증, 광기에 가까운 컬렉션의 최고의 기증 등등 찬사가 넘친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박물관들이 권력자와 재력가들의 작품 기증에서 비롯되어 꾸준한 작품기증으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온 소장품으로 시작되었고 뉴욕 빌바오 베니스 베를린까지 분관을 설립하여 글로벌 예술경영을 확대하고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의 철강재벌 구겐하임 집안의 소장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러한 미술관 박물관들은 국가와 도시의 자산으로써 후대에까지 문화예술의 유산으로 남아 예술에 있어서 공공적인 영역의 훌륭한 선례가 된다.
예술 작품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여 홀로 향유하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컬렉션, 상속세만 12조 원을 납부해야 하는 유족들은 작품을 기증하기로 결정했고 그 배경에는 이러저러한 해석들이 있으나 개인의 사유재산이었던 예술작품들이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공유재산이 되어 공공적으로 향유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대로 공공의 문화유산이 되는 작품들이니 더욱더 그러하다.
머릿속을 맴도는 또 하나의 상념, 그런데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산재 인정은 왜 그리 힘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아직도 반올림 관련한 소송들에 관한 기사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을 논하는 것이, 예술에 있어서 공공적인 것을 실천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보편적 가치에 앞서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오늘도 공공예술 문화예술의 공공성 등에 관해 수많은 논의들이 있고 공적사업들이 행해지고 있다. 목적은 단순하다. 삶을 살아가는 보편적 가치를 공공의 문화예술로 풍부하게 완성하는 것이다. 세상에 단 한 사람도 같지 않은 개개인의 다양한 삶의 욕망을 보편적 가치 하나로 모아 내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삶에 대한 공감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공공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충분히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공공의 영역에서 예술을 논할 때 ‘예술은 삶이고 삶은 예술이다’는 한 문장으로 종종 요약된다. 오늘은 이 문장이 메아리처럼 저 멀리 허공을 맴돌다 사라진다. 그의 삶은 진정 예술이었을까. 위대한 인간의 욕망은 공공으로 귀결될 때 아름답다. 공공은 공감이니까.
올아트22C 문화기획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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