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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이건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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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시대’는 독특한 이건희 분석서다. 저자인 강준만 교수는 대면 인터뷰 없이 관련 기사와 자료만 샅샅이 뒤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재구성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 이병철 창업 회장은 부산교대부속초등학교에 다니던 이건희를 일본으로 유학보냈다. 한국전쟁의 혼란기였다. 외톨이처럼 지내던 그에게 낙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하숙집 주인 아줌마가 특식으로 끓여주던 라면.

그 덕분인지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주창하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할 때 호텔 방에서 음악을 들었으며, 개인 집무실인 승지원서 주말엔 라면을 찾았던 모양이다.

이병철(1910~1987) 창업 회장과 이건희(1942~2020) 회장이 함께 등장하는 이 장면이 떠오른 건 조만간 베일을 벗을 ‘이건희 컬렉션’ 때문이다. 1만3000점에 이른다는 이건희 회장이 남긴 미술품이다. 두 사람의 미술품 사랑은 유별났다. 창업 회장은 1982년 경기도 용인에 호암미술관을 지었다. 이 회장은 2004년 서울에 리움미술관을 열며 ‘문화의 시대’를 강조했다. 미술품 사랑이 기업 경영 DNA처럼 되물림된 듯하다. 같은 시기 수위를 다투며 한국 경제를 이끌던 여러 재벌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이건희 컬렉션이 일부 나마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계기는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다. 2008년 삼성 특검은 김 변호사의 폭로 내용을 토대로 에버랜드 창고를 압수수색했다. 이때 팝아트 거장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 많은 미술품이 유명세를 탔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 공개는 이 회장의 유산 상속세 처리를 위함이다.

이병철 창업 회장 타계 당시 이 회장이 상속한 재산은 237억 여원이었다. 이 회장은 150억 여원을 상속세로 냈다. 이 회장이 남긴 재산은 삼성전자와 계열사 주식, 미술품·부동산 등 22조~23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일가는 주식 지분 11조366억 원과 미술품·부동산을 포함해 모두 12조~13조 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오는 30일이 상속세 신고 기한이다. 이에 앞서 다음 주 상속세 및 이건희 컬렉션 기증, 조 단위의 대규모 사회공헌 계획 등을 발표할 것이란다.

주식 상속에 따른 상속세 납부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와 우리나라 근현대 작가 작품 및 해외 작가 작품이 기증될 경우 국내 미술관과 박물관 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대 규모 기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건희 시대’가 이렇게 한 획을 긋는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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