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대전에서 어떤 무기로 싸우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4차 대전에서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우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를 가장 냉철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가 중 하나로 인정받는 돈 드릴로는 최근 소설인 ‘침묵’(The Silence, 2020)의 첫 장을 이처럼 아인슈타인의 말로 시작한다.

소설은 다섯 명의 평범한 인물의 모습과 대화를 통해 정확히 밝히지 않은 어떤 원인에 의해 전자통신이 마비되어 버린 세상을 보여준다. 시간적 배경은 미국에서 또 하나의 명절과도 같은 ‘슈퍼볼’(미식축구 경기)이 열리는 2월의 첫 일요일이고, 공간적 배경은 한 부부가 이 경기를 함께 시청하려고 지인의 집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 안, 그리고 또 다른 부부와 한 젊은 제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 가정집이다. 평범하고도 의미 없는 일상적인 대화와 행위들이 오가는 가운데 “그때 뭔가가 일어난다.” 모든 전자통신이 멈추면서 부부를 태운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휴대전화와 다른 모든 전자 장비들도 멈춰 버린다.

“이내 화면이 텅 비었다. 맥스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켰다, 껐다. 그와 다이앤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꺼져 있었다. 노트북컴퓨터도 작동하지 않았다.” 전자통신은 물론이고, 전기난로도, 냉장고도, 엘리베이터도, 길거리 신호등도 멈춰 버린 순간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드릴로는 이처럼 전자기기의 역습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가상의 현대사회의 모습을 ‘제3차 세계대전’에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의 침묵은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화이트 노이즈의 침묵’이자 그들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내어준 채 살아왔던 ‘우리 현대인들의 침묵’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단어일 것이다.

나아가서 작가는 “이것을 3차 대전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게 바로 그거예요”라고 말함으로써 이것이야말로 ‘3차 대전’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확연히 달라진 현대사회에서의 전쟁의 개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사이버공격, 디지털 침입, 생물학적 공격, 탄저병, 천연두, 병원균. 사망자들과 장애인들. 기아, 역병,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전력망 붕괴. 양자의 지배 속으로 가라앉는 우리의 개인적 지각들.”

언제부턴가 세계는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전쟁”의 시대가 아니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적과의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는 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언제 들이 닥칠지 모르는 막연한 적에 대한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공간에서의 문자 총공세’로 인한 자살, ‘가습기 살균제’의 공격, ‘전자파를 비롯한 다양한 전파 노출’에 의한 질병, ‘황사와 미세먼지’, ‘유독가스나 오염물질 유출 사건’ 등. 다만 이것이 전쟁이고 국지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특히 보이지 않는 적인 미세 바이러스에게 공격당함으로써 내 곁의 동료나 가족이 하나 둘 쓰러지고, 전 세계가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인 채 우리의 인격마저도 점점 더 ‘두려움’과 ‘불신’으로 피폐해져 가는 작금의 ‘팬데믹 시대’야말로 세계대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세계는 이전의 어느 세계대전보다도 더 두렵고 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이번 대전은 나의 가족과 동료마저도 ‘적’으로 의심하게 만들고 거리를 두도록 만든다. 언제 어디서 내가 ‘적’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그리고 누가 ‘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만의 참호 속에서 세상을 향해 눈알을 굴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늘 그래왔듯이 위기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더 강렬한 희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소설 속에서 “자기 휴대폰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전자기기의 역습을 당한 후 하나 둘 거리로 나오고는 마치 처음 이러한 세상을 조우하기라도 한 듯 이웃과 서로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전자기기와 같은 사이버공간이 아닌 진짜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개개인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지금의 우리 역시 또 다른 유형의 3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 대전은 “중요한 건 세상이고 개개인은 아무것도 아닌” 채 돌아가는 작금의 세상을 멈추게 하려는 듯하다. 그러기에 이 전쟁을 겪고 난 이후의 인류는 이전과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이 전쟁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시금 사람 하나하나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인문학이 절실한 이유다.

인문학당 달리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