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되면 우리들은 늘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에 나오는 그 첫 구절을 되뇌곤 한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었던 겨울이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워내는 4월보다 오히려 따뜻하다는 시인의 이 지독한 역설은 그가 살아낸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폐한 유럽의 정신적 공황과 그의 비극적 체험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란 만드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네루다의 말처럼 우리들은 4월을 맞아 이 시구를 꼭 이렇게 해석하지만은 않는다. 4월의 지난한 역사 속엔 민주화를 위해 무수한 피를 흘려야했던 혁명의 그림자가 있었고, 모든 국민의 머릿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아니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날도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이날은 세월호의 거대한 뱃머리가 서서히 바닷속으로 기울어지던 날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그 무엇도 하지 못한 그날 그 죄책감은 우리에게 참담함을 넘어 분노로 치닫게 했다. 손톱이 빠질 듯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절규를 뒤로하고 국가는, 혹은 우리 어른들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최소한의 구조작업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왜 수학여행을 가는 꽃다운 청춘들이 잔잔한 그 진도 앞 맹골 수로에서 꽃잎으로 수장되어야 하는지 그 진실은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꼭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노란 희망들은 이제 싸늘한 기다림으로, 더는 캘 수 없는 눈물 끝에 살아남은 이들의 만가(輓歌)로만 구전될 뿐이다.
당시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나 그 고통의 현장에서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남기고 304명의 희생자와 미수습자 5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인명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실규명과 더불어 책임자에 대한 처벌 또한 올해도 여전히 답보 상태다. 지난 2019년 11월 11일,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철저히 조사를 하겠다며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세월호 참사 특별 수사단은 1년 2개월 동안의 수사를 종결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지만 이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했다. 세월호 초기 수사 및 감사 외압, 국정원과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등 17개에 달하는 참사 의혹에 대하여 대부분 무혐의 처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의 책임을 물어 기소한 해경청장과 지휘부 관계자들 모두 1심 판결에서 무죄에 해당하는 선고를 받을 정도로 수사는 부실하기만 했다.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다가오는 이즈음,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미흡하면 정부가 나서겠다는 청와대의 메시지가 이제 절실하게 기다려지는 시점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대통령의 이전 발언은 반드시 세월호에 대한 의혹과 그 진실규명을 집권 내에 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피울음으로 가슴에 묻었던 유가족들에겐 잔인한 4월을 또 맞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필자도 참사가 있었던 그해 2학년 담임으로 5월에 제주도 수학여행 계획이 있었던 터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희생된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일일 단식릴레이에 동참도 하고 부산역에서, 서면거리에서 추모문화제에 함께하며 유가족들을 만나 아픔을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봄은 오롯이 봄으로써 우리에게 다가와야 한다. 더 이상 4월이 잔인해져선 안 된다.
당시 광장에서 낭송했던 자작시 한 편으로 지금의 4월에 그 마음 전해본다. “잎이 피기도 전에/ 꽃봉오리는 떨어졌다// 수상한 계절,/ 깊은 안개와/ 방향을 가 늠키 힘든 바람이/ 때이른 음모처럼 습격한다// 제 스스로 물을 길어올리며/ 한 점 한 점 단단한 살로/ 희망을 채워 나가던/ 사월의 그 하루가/ 몹시도 기울던 날// 이 를 막아줄 든든한 동아줄은/ 어디에도 없었다// 얇은 습자지처럼 배어오는 공포와/턱밑까지 차오른 절망이/ 무수한 생채기를 내며/거대한 쇳덩어리 같은 무게로/ 순장되었다// 새파래서 너무 슬픈/ 꽃봉오리들이 눈물처럼 흩어져있다//세월이 지독하게 잔인하다”(‘세월이 잔인하다’ 전문)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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