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용당산에 등산하러 갔을 때였다. 산중턱에 새로 지은 시골집이 눈에 띄었다. 원래는 이웃에 몇 집 살았는데 다 떠나고 그 집만 남아 있었다. 깔끔하게 지은 집이라 부러웠다. 아직 주말농장이 없어서 전원생활을 동경하던 참이라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주인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집이 멋져서 들렀다며 구경할 수 없느냐고 했더니 선선히 맞아주었다. 형제들이 힘을 모아 주말마다 와서 지었다는데 큰돈 안 들이고 실용적으로 잘 지었다. 집안을 둘러보고 나오려니 라면을 끓여줄 테니 먹고 가란다. 보온 도시락을 싸가긴 했지만 초봄이라 밖에서 먹기에는 을씨년스러웠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덕분에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왔는데 그림 같던 그 집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에 전원생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나도 주말농장을 마련했다. 넓지 않은 땅이지만 여러 가지 나무를 오밀조밀 심어 놓았다. 특히 내가 신경을 쓴 것은 약나무들이다. 혈관 건강에 좋은 뽕나무, 피부 관리에 효과가 있는 월계수, 허리에 좋은 초피나무, 염증에 좋은 오가피, 위에 좋은 느릅나무와 예덕나무, 기관지천식에 좋은 보리수 등 …….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초도 골고루 심었다. 기침에 좋은 양하와 개미취, 위에 좋은 민들레와 번행초, 간에 좋은 엉겅퀴, 눈에 좋은 아로니아, 독감에 효과가 있는 에키네시아, 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천년초 등…….

해마다 봄이 되면 약초들이 땅을 뚫고 왁자하게 새순을 내민다. 이른 봄에 일찍 올라오는 것도 있고 날이 따뜻해져야 나오는 종류도 있다. 특이한 것은 위에 좋은 나무들이 대체로 추위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느릅나무와 예덕나무는 4월 중순이 지나야 싹을 내민다. 다른 나무들보다 한참 늦다. 나는 이걸 보고 깨달았다. 위를 보호하려면 가급적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맵거나 짜거나 너무 찬 음료는 위염의 원인이다.

내가 이십대 초반에 폐결핵에 걸린 적이 있는데 독한 결핵약을 오래 먹은 데다 초보 교사 시절에 엄격한 윗사람을 만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위궤양이 생겼다. 그걸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탓에 복막염으로 악화되어 위 일부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 뒤부터는 주말마다 꼬박꼬박 산을 오르며 체력을 길렀고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숲에서 풀었다. 산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면 항상 뿌연 연기에 뒤덮여 있었다. 하루라도 산으로 가면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짜고 매운 음식, 자극적인 것을 가능하면 삼갔다. 약나무를 심은 것 역시 건강을 위해서다. 위가 좋아야 어떤 병이든 이겨낼 수 있다. 겨울에는 유근피와 말린 뽕잎을 넣어 물을 끓여 마시고 봄부터는 뽕잎과 느릅나무 예덕나무 오가피 등을 넣고 끓여 마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이다. 남과 싸우거나 신경전을 벌인 뒤에 좋은 음식을 먹어봐야 몸속에 들어가면 독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서 약초 나무를 먹는다고 한들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다. 나는 약나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약초만 믿지 말고 좋은 생활 습관을 몸에 붙이자. 운동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몸에 좋은 약초를 먹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평범한 식재료일망정 꼭꼭 잘 씹어 먹고 부지런히 걸어 다니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떻게 먹느냐’이다. 평소에 건강을 위해 힘쓰지 않고 몸을 함부로 쓰다가 아픈 뒤에 병원에 가봐야 늦다. 의사가 병을 다 고쳐 주는 것은 아니다. 아프기 전에 미리 미리 조심하고 건강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면 두 배로 더 고생하지 않겠는가?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