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울시장 선거 개표가 끝나는 8일부터 대권의 계절이 열린다.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언론의 관심 1호. 그는 정치 무대에 공식 데뷔하기도 전에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집권여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정치인’ 윤석열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 국제신문이 지난 3월 30~31일 부산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문재인 대통령 반대(58.7%)가 지지(33.8%)를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보수 우위는 윤석열에게 더 없는 호재. 여의도에선 “윤석열이 제3지대 창당과 국민의힘 입당을 두고 저울질한다”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나온다.

정치인은 검사와 다르다. 법률을 만드는 사람과 그 법률을 지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그래서 유권자는 늘 정치인에게 ‘철학’을 묻는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각각 저서 ‘고통에 대하여’와 ‘보수의 재구성’을 통해 자신의 지향점을 분명히 드러낸 것은 그에 대한 응답이다. 과거 부산시장 후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직 윤석열의 시대정신은 알려진 게 없다. 그가 사용한 단어 중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법치’ ‘상식’에서 어슴푸레 유추할 수 있을 뿐.

윤석열이 가장 먼저 겨냥할 지점 중 하나는 지난 4년일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권 심판론에 편승해 청와대와 투기 의혹에 휩싸인 LH 임직원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공정’을 외치는 시나리오다. 유권자는 또 물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그리는 미래는 뭔데? 당신은 유능한가?” 공허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 꽃길은 금세 비에 젖어 버린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그랬다. 안철수는 10년 전인 2011년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청년 멘토’로 젊은 층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낡은 정치에 대한 환멸은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다. 자신보다 지지율이 낮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는 순간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다. 지지자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안철수의 ‘새정치’도 언젠가는 형체를 드러내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안철수의 10년은 정치를 바꾸지 못했다. 무소속→새천년민주당 입당·탈당에 이어 호남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 창당→보수인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지켜본 상당수 젊은 층은 안철수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새정치는 그 유명한 “제가 MB 아바타입니까”와 함께 안철수를 희화화하는 소재로 전락했다.

윤석열도 여의도에 발을 딛는 순간 10년 전 안철수처럼 새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을까. 과거 안철수의 심장을 할퀴었던 “가짜 진보” 또는 “얼치기 보수”와 같은 독설이 윤석열에 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생활까지 탈탈 터는 혹독한 검증을 견딜 만큼 맷집이 강한지도 관전포인트.

세계 어느 나라 지도자도 경험 못한 여러 고차방정식도 풀어야 한다. 유권자는 이미 차기 주자들에게 ①해양과 대륙세력 틈바구니에서의 생존전략 ②미국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중국과 교역을 잘 하는 책략 ③고속 성장기에서 저속성장기로 접어든 우리 경제에 대한 혜안 ④늘어나는 복지 예산을 감당하기 위한 대책 ⑤일본과의 역사 갈등은 물론 핵보유국 북한과 국경을 맞댄 분단국의 외교에 대해 적으라는 문제집을 발송했다. 진영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은 물론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다. 윤석열은 특히 검찰총장이 정치활동을 선언하는 순간부터 의심받게 될 검찰의 중립성에 대한 논리 준비도 필수적이다.

윤석열은 이미 ‘장외 정치’를 시작했다. 특정언론과의 인터뷰에서 “LH사건은 망국적 범죄” “부산·서울시장 선거는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 때문”이라고 메시지를 발산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노회한 정치인도 울고 갈만큼 능수능란한 언론플레이다. 국민의힘은 안철수에 이어 윤석열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떤 형태로든 제3세력과의 보수 연대는 기정사실이다. 과연 윤석열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를 극복하고 문 대통령의 유산까지 포용하는 리더십을 갖췄을까. 아니면 자신을 내친(?) 세력에 대한 한풀이로 ‘반문 전사’에 그칠 것인가.

대통령선거일인 내년 3월까지 남은 1년은 짧지 않다. 지지율 1위가 추락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민주당 김두관·김부겸 ·이낙연·이재명·정세균과 국민의힘 유승민·원희룡에 홍준표(무소속)까지 모두가 역전할 기회도 열려 있다. 누구의 시대정신이 가장 각광받을 것인가. 검증의 계절도 열렸다.

디지털국장 ns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