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여야 할 것 없이 이번 정권에서 가장 실패했다고 평가되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LH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그 와중에도 재개발의 바람은 전국 곳곳에서 불고 있다. 요즘 가장 인기가 있다는 드라마에서는 부동산 투기 때문에 심지어 서로 죽고 죽이기까지 한다. 가상의 세계에까지, 그야말로 부동산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그보다 어린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이 서로 사는 아파트 이름을 물으며 놀리고 따돌린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 않다. 엄마와 아빠가 타는 자동차의 브랜드 이름이 친구를 공격하는 창이 되어 마구 휘둘러지는 시대.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고 환산해 생각하는 어른들의 세상은 아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상처를 입히고 있는지 우리는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면서 이렇게 잔인할 수는 없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보고 느끼는 것들은 이후로 알게 모르게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하는 방식과 기준이 되거나 또는 그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세계관의 기초가 수립될 뿐만 아니라 피상적이거나 깊이 있는 관점을 갖게 된다. 그 이후로도 계속 생각이 발전하고 완성되지만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결국 어린 시절에 보고 듣고 겪은 것이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 짓고, 그 시선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가 된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그런 내면의 질문 없이 오직 물질적인 것들로 서로를 구분 짓고 낙인찍는 세계에서 인간이 설 자리는 없다.

1991년 일본에는 토토로의 숲을 지키기 위한 대대적인 시민 운동이 일어났다. 80년대 개발 광풍으로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숲을 지키기 위해 시민이 “토토로가 살고 있는 숲을 지키자”고 목소리를 낸 것이다. 1988년에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 도토리나무 정령 토토로 말이다. 토토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어린이들은 숲이 사라지면 토토로가 위험해진다고 생각했고, 일본 각지에서 토토로가 사는 숲을 지켜달라는 어린이들의 편지가 쏟아졌다. 이는 한 평 땅 사기 운동으로 이어져 당시 1억 엔이 모금되었고, 다행히 사야마 숲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토토로의 숲을 지켜낸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인간이 마음대로 개발해도 되고 그 땅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수단으로 숲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토리를 좋아하는 정령이 사는 곳,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세상을 신나는 곳으로 만들어 줄 정령이 어린이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숲을 보게 하는 힘이 바로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세상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야기의 출발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면, 적어도 아이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는 사랑 우정 정의 용기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로 인한 많은 문제들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삶이 더 행복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작품에서 끊임없이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를 이야기한 것 역시, 현실이 그렇지 아니하더라도 적어도 이야기 속에서는 지켜져야 할 정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토토로는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정령이다. 토토로뿐만 아니라 오직 아이들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작고 위대한 존재들이 있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어른들의 이해 관계와 욕망이 뒤엉킨 낡고 오염된 단어들이 아니라, 순수와 정의의 말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들의 관심이 부동산과 명품 물건이라는 나에게만 쓸모 있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숲과 나무와 친구와 가족이라는, 함께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에 있어야만 이 세계는 지속가능하다.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가치를 담은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어 아름다운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자.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아이들이 꿈꾸는 멋진 세계를 응원해주자. 토토로의 숲이 지켜졌듯, 어쩌면 그것이 광적인 부동산 투기를 막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인디고잉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