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새로운 장소에 플라워 스튜디오를 꾸미고 올해 첫 수업이 시작될 즈음 부산 클래식 음악제 무대 장식과 꽃의 치유에 대한 방송 원고를 쓰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예정된 일이라 미리 준비해 두었건만 막상 3월이 시작되고 해야 할 일들이 겹치니 생각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그 사이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매화 곁에서 하얀 목련이 탐스런 꽃잎을 활짝 펼쳤다. 겨울 내내 꽃봉오리를 덮고 있던 목련의 솜털이 사라졌다. 아! 목련이 피었구나. 급히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해야 할 일들을 처리 하는 동안 봄날의 시계 바늘은 순식간에 옮겨져 있었다. 개나리의 노란 빛깔이 선명해지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고 있는 벚나무에는 핑크빛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점심 저녁을 건너뛰고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그날 밤. 나는 어린시절 봄밤의 기억을 떠올리며 바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비들이 날개 접고 꿈꾸는 봄날에, 진달래 개나리도 예쁜 꿈을 꾼다지. 그래서 봄밤에는 예쁜 꿈을 꾼다지. 예쁜 꿈을 꾼다지.” 초등학교시절 배웠던 합창곡을 흥얼거렸다.

어린 시절 나의 예쁜 꿈은 지금의 나의 모습이었을까?

나의 플라워 클래스에는 다양한 삶의 괘적을 그리던 사람들이 또 다른 꿈을 꾸기 위해 찾아온다. 자신의 인생과 가족에게 충실했던 만큼 바빴던 시간을 뒤로 하고 스스로에게 쉼표를 허락한 사람들이다. 꽃은 보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라고 하는데 그 꽃을 아름다운 모양으로 꽂아나가는 것은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시간이 된다. ‘꽃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이것을 꽃과 인간이 특별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봄날이 되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눈과 손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절화를 이용해 꽃을 가까이 하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마주하는 꽃에 대한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소중하게 꽃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꽃꽂이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더 이로운 생각을 하게 한다.

이렇게 마음을 담아 꽃을 꽂고 나면 깨끗한 곳에 두고 싶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흐트러진 공간을 정리하게 된다. 마침내 잘 정돈된 곳에 꽃을 두고 나면 다른 곳들도 깨끗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때론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한다. 화사해진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기쁜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꽃의 향기가 번져나가는 것처럼 마음에도 새로운 의욕과 용기가 돋아나는 것이다.

요즘 같은 봄날에는 피어나는 꽃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특히 꽃가지를 물병에 꽂아두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시길 바란다. 한 두가지로도 충분하다. 멀리 있는 나무에서 벌어지던 놀라운 일들을 눈앞에서 보게 될 것이다. 팝콘처럼 터뜨리는 작은 봄꽃들의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꽃의 모습을 볼 뿐만 아니라 꽃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 꽃에게 향하던 눈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면 된다. 이때의 생각이나 느낌을 꽃을 바라보듯 지켜보자. 그 마음을 알아차린 다음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일상에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당연히 긍정적이고 행복한 변화가 될 것이다.

꽃을 앞에 두고 멈추어 보자. 마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수록 내면에 닿는 꽃의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꽃이 속해 있는 자연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둘이 아닌 하나의 같은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임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꽃을 통해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리가 자신과 싸우지 않고 평화로움을 느끼려면 아름다움이 필요하다’고 한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페펭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찾은 평화는 꽃이 선사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고 말이다. 얼마있지 않아 핑크빛 벚꽃이 만개할 것이다. 꽃비가 내리는 봄밤이 그리운 나는 오래도록 벚나무 아래에 앉아 있고 싶다. 내 머리와 어깨 위로 벚꽃잎이 소복이 쌓여서 어린 시절 봄밤의 꿈이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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