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대등의 차이는 뭘까? ‘평등’ 하면 딱 떠오르는 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같은 모두의 평등이다. 말하자면, 평등의 절대성 또는 절대적 평등 같은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전진해오는 과정에서 평등이라는 지향과 구호는 엄청나게 중요한 구실을 했다. ‘대등’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이런 말을 예로 들어보자. “좋아! 너는 부자고 나는 가난해. 그 차이를 인정해. 하지만 인간으로서 가치는 대등해. 우리는 대등한 존재야!” 대등과 평등 사이에 같은 듯 약간 다른, 뉘앙스 차이가 있다.

‘평등’의 말맛이 절대적 규범이나 법·제도를 연상하게 하는 쪽이라면, ‘대등’의 말맛은 상대성을 인정하며, 실생활에 가깝고, 조금은 더 실질인 데가 있다. 이 글에서는 대등에 집중하고자 한다.

석학 조동일(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선생은 요즘 유튜브 채널 ‘조동일 문화대학’에서 부지런히 강연한다. 그는 대학자이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문학·미학·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국문학통사’를 비롯해 그가 쓴 수많은 걸출한 저작을 거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구비문학·탈춤·판소리·전통예술 영역에서 쌓은 업적 또한 엄청나게 깊고 높다. 이어 세계 차원의 문학을 폭넓게 깊이 연구·비교하면서 동아시아·한국의 문학사상 연구 지평을 넓히는 모습은 놀랍다.

‘조동일 문화대학’에서 재미있게 보고 크게 배운 강의로 ‘우리 공연예술의 대등 창작 원리’가 있다. “인류사는 차등과 대등의 싸움이었다. 차등을 부정하고 대등을 실현하는 쪽으로 나아갔다.…예술은 그러한 도전지여야 한다.”(조동일)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극작-연출-공연-관람 단계로 위계가 나뉘고(관람객은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낮은 단계에 위치한다), 무대에서는 전문가의 ‘기이한’ 재주가 펼쳐지는 현재 방식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고 우리 삶을 담기 힘들다고 비판한다.

그는 ‘대등 창작 원리’를 제시한다. 시나위와 가야금·거문고 산조에서는 합주가 절로 이뤄지고 현장 분위기에 따라 연주가 매번 달라진다. 탈춤·대방놀이·판소리에서 관객과 예술가 사이에서 대등하게 이뤄지는 상호작용과 교감 자체가 핵심이고 본질이다. 그렇게 예술가와 관람인이 차등 없이 대등하게 창작에 참여해 끝내 대동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 ‘대등 창작’이다.

대등 창작 원리는 ‘창조주권론’으로 나아간다.” “선진국을 따르면서 원망하는 시대는 끝나고 있어, 세계사의 대전환이 요망된다. 우리가 앞장서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나라 안팎에서 일제히 하는 말이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인류 본연의 창조주권을 되살려 시대 설계의 기본 원리로 삼아야 한다.” 모두가 대등하게 (예술작품을) 창조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창조주권론 핵심이다.

가만 생각해본다. 인간은 언제 존엄해지는가? 나는 언제 가장 뿌듯한가? 비로소 깨닫겠다. ‘창조’했을 때다. 그래서 예술이 위대하다. 대등 창작 원리와 창조주권론은 일부 예술가·이른바 전문가에게 창조할 권리를 맡겨놓지만 말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누리게 해야 하며, 거기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예술, 새로운 미학이 탄생한다고 역설한다. 창조주권론에는 과격한(?) 주장(예컨대 ‘판소리 완창은 관객을 학대하는 시도’다)도 있지만, 듣고 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 혁명성이 있다. 새 시대 예술론을 만났기 때문이다.

창조주권론에서 큰 가능성과 매력을 느낀다. 한민족 문화 특징과도 잘 맞다. BTS 인기도 실은 팬(아미)과 예술가(BTS)가 대등해지고 가까워지면서 형성되고 폭발한 것 아닌가. 인터넷을 검색하다 ‘노 서렌더 페스티벌(No Surrender Festival)’의 2017년 제1회 행사 동영상을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 조동일 선생이 말한 대등 창작 원리와 창조주권이 이런 식으로 현실에서 구현되는구나 하고 느꼈다.

No Surrender는 “항복 따윈 안 해!” “굴하지 않아!” “항복하지 마!” 등으로 옮길 수 있겠다. 호세프 마리아 폰스(Josep Maria Pons)가 기획해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빌라노바 데 벨푸이그에서 시작했다. 제1회 때는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시민과 음악인 1001명이 참여해, 미국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No Surrender’를 연습한 뒤, 야외에서 신나게(정말로 신나게!) 연주하며 노래하고, 이를 동영상에 담았다.

이 영상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이토록 아름다워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 대등하게, 창조적으로, 예술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을 나는 일주일 전 발견했다. 이 영상이 기록 중인 203만여 조회 수 가운데 100번 정도는 내가 본 것이다. ‘No Surrender’ 가사 일부를 소개한다. “No Retreat! baby. No Surrender!”(쫄지 마! 굴하지 마!)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