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신시가지 백병원 건너편에는 부산그린에너지㈜라는 기업이 있다. 겉으로 보면 사무실 한 동 있고 컨테이너박스 같은 설비가 1, 2층에 설치돼 있어 무슨 창고 같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를 알기 어렵다. 부산 시민 중 이곳에서 해운대구 연간 전력 사용량의 14%(25만MWh)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이 몇 명이나 될까. 지역 난방 공급량은 80%(24만Gcal)에 달한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발전소가 도심 속에 있다니 놀랍다. 그린에너지㈜는 도시가스에서 수소(H₂)를 추출해 공기 중의 산소(O₂)와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 결과 전기뿐만 아니라 열도 얻는다. 민관이 힘을 합쳐 신에너지로 조성한 발전소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2002년 출간한 ‘수소혁명(The Hydrogen Economy)’에서 수소에너지가 가져올 혁명적 사회 변화를 예견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탈탄소화로 진행되고, 형태는 고체→액체→기체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주요 에너지는 ‘나무→석탄→석유→천연가스’로 이동했다. 우주 질량의 75%, 우주 분자의 90%, 지구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수소는 자연에서 무한정 얻을 수 있고 전기를 생산한 후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는 수소를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로 평가했다.

하지만 수소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수소는 공기보다 가벼워 이를 추출하기가 쉽지 않다. 고압으로 액화시키기에는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수소는 현재 철강을 생산하거나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와 천연가스를 개질(改質)해 얻는 두 가지 방법이 쓰인다. 하지만 이는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래서 물에서 얻는 수전해 방식이 그린수소라고 불리며 각광을 받고 있다. 수전해 과정에서 필요한 전기를 어떻게 얻느냐가 해결 과제다.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는 없고 태양광 풍력 수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기분해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해 우리나라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곳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적은 전력으로 많은 양의 수소를 추출할 수 있는 촉매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수소를 생산하더라도 이를 이동시킬 수단 역시 만만치 않다. 세계 각국은 이 분야 개발에서 앞서기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은 2017년 세계 최초로 수소경제 시대를 선포하며 많은 투자를 진행해왔다. 이번 도쿄올림픽을 수소 사회 쇼케이스로 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무엇보다 수전해 방식의 수소 생산 실증화 연구가 활발하다. 내년까지 수소차 4만 대, 충전소 160 곳을 확보할 예정이다. 우리도 문재인 대통령이 수소경제로의 이행을 선언하며 수소경제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차를 상용화해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할 만큼 앞서 있다.

하지만 시선을 부산으로 옮기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이웃 울산에 8곳, 창원에 5곳의 충전소가 있지만 부산에는 두 곳뿐이다. 울산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수소도시를 선포하며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다. 부생수소를 활용한 생산량의 전국 50%를 차지할 정도다. 생산된 수소를 배관으로 이동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수소규제자유특구 지정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수소 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수소산업진흥원 설치, 가정용 수소연료전지 보급 사업도 선도한다.

부산시는 내년까지 충전소 17곳을 더 설치하고 수소차 총 4500대, 버스 총 100대를 보급할 예정이다. 2040년까지 가정용 수소연료전지 보급과 암모니아 기반 수소저장기술 개발, 고효율 수전해 기술 개발 등에 1조 원가량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부산의 장점을 살릴 특화방안이 필요하다. 수소경제 마스터플랜 수립과 조례도 제정해야 한다. 지역 특성을 살린 해양수소 선도도시 전략은 어떨까. 기장 해수담수화시설을 수소 생산에 필요한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차기 부산시장이 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수소경제에 대한 비전을 읽을 수 없다. 눈앞에 다가온 가덕신공항 건설과 수십년간 헛물만 켠 대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지만 미래 먹거리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탄소중립형 전환도시 역시 지역 발전에 필요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수소경제와 관련된 인사를 만나 교류해 비전을 세우길 바란다. 마침 지역에서도 협동조합 기업 대학에서 수소에너지를 활용하는 연구가 싹트고 있다. 이들이 맘껏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선진 수소도시 실현은 앞당겨질 것이다.

편집국 부국장 nam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