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터미네이터가 미래에서 나체로 도착한 뒤, 근처 술집에 들어가서 자신이 입을 옷을 뺏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과 덩치가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마치 터미네이터의 시각인 듯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왜냐하면, 시각정보를 바로 CPU로 전달하면 되지, 마치 컴퓨터의 모니터처럼 그 과정을 실제 터미네이터의 시각인 듯이 “나와 덩치가 비슷하군”하고 화면에 표현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면일 뿐이지요. 실제로 사람의 뇌도 같은 형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눈으로 본 정보를 뇌가 직접처리하지, 마치 어떤 ‘스마트 안경’을 쓴 것처럼 그 정보가 시각적으로 해석되어 보이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인간의 의식에 관련된 책을 보다 보니, 무척 신기한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뇌 속에 전기적 자극을 주는 기구를 삽입하는 시술 중에 발견한 현상인데, 뇌의 특정부분을 자극했을 때, 마치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것처럼 자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높은 곳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죠. 그 특정한 뇌의 부분이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 신호를 인지기능과 같이 통합하여 판단하게 해주는 영역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전기 자극이 주어지게 되면 마치 가상현실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영화에서 나온 시각이 어쩌면 우리 뇌의 기능에 숨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늘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자신의 신체에 대한 상이 뇌에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객관화’의 능력이 숨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말 그대로 숨어있기 때문에, 특별히 계발하지 않고는 잘 발휘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이 능력을 잘 발휘하기 위한 초보적 단계는 한 템포 멈추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한번 자문해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생체 신장이식 수술을 하다가 복잡한 혈관 모양 때문에, 수술이 힘들어서 몇 번이나 혈관을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며, 2시간이면 끝날 수술을 4시간을 더 소모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보다 못한 동료 선생님들이 나가서 좀 쉬고 와서 다시 해보자는 말을 해서 잠시 나가서 물 한 잔 마시고 화장실을 가다가 그 앞 거울을 지나가는데, 문득 무척 피곤해 보이는 제 모습이 비쳐 보였습니다. 제 자신이 좀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제가 제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지요. 이때 저절로 기도가 나오더군요. 주여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소서.
잠깐 한숨을 쉬고, 방금 전의 저 자신을 돌아보니 조급하고 그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던 모습이 보이더군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다시 파악한 다음, 차분하게 다시 시작을 하니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서 서두를수록,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될수록, 수술은 힘들어집니다. 어디 수술만 그렇겠습니까?
예전에 EBS TV 특강을 보니, 어느 유명한 동양철학자가 그러시더라구요. 어떤 사람의 아이큐가 130이라면, 다른 사람을 보는 아이큐는 무려 1만 3000정도 되는데, 자기자신을 보는 아이큐는 고작 13도 안 된다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은 귀신같이 찾아내지만 자기자신의 약점은 누가 말해주기 전까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숨어 있는 자기객관화의 능력을 계발해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큐라도 발휘하고 살 것 같습니다.
이럴 때마다 뇌에 전기 자극을 주고 싶은 충동은 저만 느끼는 걸까요? 그렇지 않겠지요. 제 1만3000의 아이큐로 판단해 볼 때, 제 주변에도, 그리고 인터넷상에도 전기자극이 필요한 분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양산부산대병원 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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