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19는 우리의 2020년을 오롯이 앗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거리를 두어 관계가 단절되고, 경제는 성장을 멈췄다. 이로 인해 누군가는 오랜 직장을 등져야 했으며 누군가는 평생 일구어 놓은 가게 문을 닫았다.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사회가 분열되어 ‘남 탓’을 하는 분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힘겨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한 여름 더위를 식히는 인파로 북적이던 부산 해운대, 축제 기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던 부산 거리에 활기가 보이지 않았다. 감염병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우선이 되었던 한 해, ‘우리’는 그저 위축되고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의 줄기를 볼 수 있었다. ‘나’를 지키는 것은 내 가족, 내 동료, 내가 속한 사회를 지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 마스크 쓰기를 생활화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방역에 적극 협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세계의 귀감이 되었다.

새해를 맞은 지금도 ‘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그 속에서 ‘상대’를 생각하며 ‘우리’를 함께 떠올리는 자세는 잃어버린 2020년을 되찾고 지금의 사회를 치유해 더 나은 2021년을 제대로 일궈 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필자는 ㈜골든블루의 부회장이자 기업인으로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좌우명으로 항상 앞세웠다. 자기중심적인 관점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항상 같이 생각하면서, 자만과 오류를 경계하고 배려와 존중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골든블루가 국내 최초로 36.5도 저도 위스키 ‘골든블루’를 출시한 것도 ‘역지사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약 10년전 ‘웰빙’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기호식품인 커피, 담배, 그리고 술에 변화가 찾아왔다. 카페인 함량을 줄인 ‘디카페인 커피’와 ‘저타르 담배’가 그랬고 ‘저도주’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다. 커피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건강을 생각하자는 분위기가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트렌드에 힘입어 우리는 웰빙을 추구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위스키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봤다. ‘위스키는 꼭 40도를 넘어야 하나?’ ‘도수를 낮춰보면 어떨까’ 도수가 낮지만, 부드러우면서도 맛과 향이 부족하지 않은 위스키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게 약 3년간의 연구 및 개발 끝에 ‘골든블루’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탄생한 ‘골든블루’의 약진으로 글로벌기업들이 판을 치는 치열한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지방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골든블루가 선두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이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 한 것 아니냐고 다들 반문 할 것이다. 물론 당연하고 필히 그렇게 해야 기업이 생존한다.

그러나 생각을 하는 것과 그 생각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조금만 힘들어도 바로 상대방 입장이 아닌 나의 입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가 아닌 ‘너’ 때문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한다. 영어에 UNDERSTAND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알다’ ‘이해하다’‘깨닫다’ 이다. 이를 풀어보면 UNDER(아래)이고, STAND(서다)이다. 즉 ‘아래에 서다’가 이해하다인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도 풀어 직역하면 易(바꿀역) 地(땅지) 思(생각사) 이다. ‘땅을 바꾸어 생각하다’ 이다. 즉 입장 바꾸어 생각하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좋은 땅과 나쁜 땅, 위쪽 땅과 아래쪽 땅에 따라 곡식의 수확이나 삶의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쩌면 땅문제가 생명과 직결될 만큼 큰 문제일 것이다.

동양과 서양이 문화와 역사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만 남을 이해 하는 측면에 관해서는 이렇게 일치 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다 같은 모양이다.

올 한해는 더욱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 중에 의료진 종사자 몇몇은 우리를 위해 헌신하다가 그렇게 된 것인데 주위 사람들이 기피하거나 심지어는 다니던 직장을 본의 아니게 그만둬야 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만약 그게 ‘너’가 아니고 ‘나’ 였다면….

우리 모두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아래에 서서 상대방을 생각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최용석 ㈜골든블루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