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끝난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했다가 막판에 조 바이든 당선인에게 뒤집히는, 드라마 같은 상황을 보고서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지도자와 국민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미국과 달라 보였다. 선거의 종착점에 도착하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우리처럼 하루 만에 결판나는 선거 구조가 아니었다. 며칠을 지켜봐야 겨우 분위기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바이든의 당선이 거의 확정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이양을 해줄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미국 대선을 관전한 후 여러 가지 배울 게 있었다. 무엇보다 ‘정치는 정직해야 한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논어에는 공자와 노나라 실권자인 계강자가 정치를 두고 나눈 대화가 나온다. “정치가 무엇이냐”는 계강자의 물음에 공자는 “정치는 바름이다”고 말했다. 공자는 이어 “당신이 백성을 바르게 이끈다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권력자가 덕과 예로써 통치한다면 누가 지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바른 목표를 정하고 술수를 쓰지 않고 정직한 방법으로 나아가야 함을 지적했다고 본다. 이 경구는 책에만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게 놀랍다.

재선할 것 같았던 트럼프가 낙선한 원인을 찾는다면 바로 거짓말이 아닐까. 트럼프가 국민에게 정직하지 못해 미국민은 그를 심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4년 전 선거 때보다 더 많은 7100만여 표를 얻었지만 선거에서 패배했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를 따돌렸던 러스트벨트에서는 바이든에 역전을 허용했고, 공화당 아성이었던 애리조나마저 바이든에 내줬다. 선거인단 16명이 걸려 있는 조지아주의 재검표가 시작됐지만 트럼프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합 주에서 바이든을 넘지 못했다. 지난 7월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보면 트럼프는 3년 6개월 동안 2만 번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하루 16번꼴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트럼프보다 거짓말을 많이 한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다음으로 떠오른 장면은 세월호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지도자는 국민이 심판하게 돼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대통령직을 상실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창궐을 막지 못해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괜찮다며 천하태평이었다. 자기가 걸려봤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며 헬기를 타고 돌아와 백악관 앞마당에서 승전한 것처럼 쇼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하루 18만 명 이상이 코로나에 걸리고 지금까지 약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이들 가족과 친인척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명인데, 이들이 트럼프에 표를 줄 리 만무하다. 코로나19 확진자는 1100만 명을 넘었다. 고통 속에서 지내는 환자가, 그 가족이 트럼프를 좋아할 리 없다.

국민을 이간질하고 분열시킨 것도 심판을 받은 원인으로 지목된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에서 백인을 강조했다. 히스패닉과 흑인을 차별했다. 백인이 이들을 혐오하게 만들었다. 집권하자마자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겠다며 남부 국경지대에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려 했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과잉 진압해 숨지게 함으로써 흑인의 반감을 샀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지지층인 중산층 이하 백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미국 인구 중 백인 인구는 1960년대 85%, 2000년 69%, 2020년 현재 60%로 감소세다. 다르게 생각해 이 같은 60%의 지지를 받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분열보다 화합과 통합을 원하는 백인도 상당수 있음을 트럼프는 간과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분열 정치는 외교에서 미국 우선주의로 나타났다. 미국의 이익을 챙기려고 동맹국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실무팀의 합의를 무시하고 갑자기 한국에 방위비를 4배 더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쟁국인 중국을 대하는 자세는 가관이다. 간첩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며 중국 제품을 팔지 못하게 했다. 트럼프가 유럽 정상을 무시하는 기사는 수도 없이 나왔다.

미국은 그동안 다른 나라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조롱거리가 됐다. 국민의 심판을 받아도 반성할 줄 모르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절반 가까이 지지하는 국민, 바이든과 트럼프로 나눠 폭력을 휘두르는 지지자들. 미국의 민낯을 한 번에 본 셈이다. 오죽하면 나이지리아 한 상원의원은 “아프리카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배웠다. 아메리카는 이제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고 비꼬았을까. 이젠 우리도 미국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 어디에도 영원한 건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는 게 세상 이치다.

편집국 부국장 nam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