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인상이 짙다. 현 21대 국회를 두고 하는 얘기다. 임기가 시작된 지 내일로 4개월째를 맞는데, 종전과 별 다를 바 없어서다. 숱한 파행으로 역대 최악이란 오명이 붙은 20대보다는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코로나 충격에 세상이 바뀌고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데도 우리 국회는 환골탈태는커녕 구태를 거듭하니 말이다.
우선 법률안 처리만 해도 그렇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니, 21대 들어서 어제까지 의원들이 낸 법안만 총 3900건을 넘어섰다. 하지만 처리는 176건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본회의에서의 원안·수정 가결 등으로 입법이 이뤄진 것은 148건이다. 나머지는 접수 혹은 상임위원회에 계류 상태로 있다. 출발부터 ‘원 구성’을 둘러싼 대립으로 여야가 거의 허송세월을 했고, 민생과 동떨어진 정쟁이나 당리당략에 여전히 함몰돼 법안 심의가 지지부진한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폭증세다. 임기 개시 후 4개월 시점으로 비교하면 18대 국회 때는 879건, 19대 때는 1791건, 20대 때는 2293건이다. 이를 포함해 4년 임기 전체로도 매번 5000~6000건씩 늘어났다. 반면, 실제 법률에 반영된 비율은 30% 남짓이다. 대다수는 폐기된 셈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의원 개인의 실적을 의식한 ‘묻지마 식’의 법안 발의가 많아서다.
여기에는 일명 ‘품앗이 발의’도 한몫을 할 터다. 법안 발의는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의원 간 친분 관계나 네트워크에 따라 다른 의원의 대표발의에 이름을 올려주는 행태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부산 지역 일부 초선의 경우 자신이 직접 만든 법안은 고작 1건인 데 비해 공동발의로 집계된 것은 100건을 훌쩍 넘는다. 어느 중진 의원은 20대 출범 이후 대표발의가 하나도 없지만, 공동발의는 50건을 웃돈다.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격이다. 여기에다 이미 발의된 것과 비슷한 법안, 단어 혹은 문구만 조금 바꾼 법안, 폐기됐던 것을 다시 써먹는 법안 등이 수두룩한 것도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첫 정기국회의 나흘간 대정부질문은 더 실망스럽다. 추미애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이 온통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정작 민생·개혁 문제는 사라졌다. 추 장관의 답변 태도도 볼썽사납지만, 중요한 정책 현안이 뒷전으로 밀린 것은 여야 모두 질타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여당의 한 의원은 국회법에 규정된 일문일답 방식이 아니라 본인 발언만 이어가면서 대정부질문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고비용 저효율의 비생산적인 국회 운영상은 고질병으로 굳어졌지만,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하다. 예컨대 지난 20대에서 발의된 법안 2만4141건 중 4년 내내 계류되다가 결국 폐기된 것이 1만5342건에 이른다. 지난 18대 때의 7220건 폐기보다 배 넘게 많다. 지금 추세로는 21대에서도 뻔하지 싶다. 3만 건 가까운 발의가 예상되는데, 그 대다수는 휴지조각으로 바뀐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국회의 의원 보수(세비) 대비 효율성이 세계 최하위권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런 후진적인 행태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임기 4개월 만에 부동산 투기 등의 사회적 물의로 탈당하거나 제명된 의원이 속출하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그 중 이해충돌 논란은 잊을 만하면 터진다. 그런데도 방지법률 마련은 하세월이다.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제정된 지 32년 된 이 법을 달라진 시대상과 생활환경에 맞춰 고치는 게 시급한데도, 20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여야 정치권이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과 지역의 염원을 외면한 처사라는 지탄을 받고도 남는다. 21대에 법안이 다시 제출된 상태인데, 똑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
그 외에도 국회에는 처리해야 할 법안이 산적해 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덜어줄 생각이 있다면, 정쟁과 당리당략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 이제는 입법부 본연의 기능과 존재이유를 실천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여당은 오만과 독주에서 벗어나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국정을 감시·견제하되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옳다. 아울러 국회 운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마땅하다.
우리 국회는 마치 거대한 블랙홀 같다고 한다. 국회에 가면 모든 것이 실종돼 버린다는 뜻이다. 민생도, 개혁도, 정의도, 희망도, 심지어 진실까지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칸막이의 진영논리와 여야 간 대립·갈등이 판을 친다. 국민대표들이 모인 민의의 전당이 계속 이런 모양새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더욱이 엄혹한 코로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힘들고,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도 어렵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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