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 검경 수사로 세상에 드러난 ‘한의사 부부 아들 필리핀 유기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아동 보호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남자아이가 6살때부터 8년 가까이 국내외를 떠돌아다녔는데도 관련 기관 어디서도 걸러지지 않았다. ‘칠곡 계모 사건’ ‘원영이 암매장 사건’ 등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도 개선 요구가 빗발쳤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소년이 부모가 유기한 상태에 있음을 보다 일찍 알아챌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게 아니다. 2012년 주소지가 대구였을 때 취학 통지서를 받은 사실은 부모도 인정했다. ‘원영이 사건’을 계기로 미취학 아동에 대한 관리가 강화되기 이전이긴 하지만, 당시에도 관련법상 정당한 사유없이 등교하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학교는 관할 주민센터와 교육청에 이를 알리도록 돼 있었다. 이 절차가 누락됨으로써 소년은 공적 구제의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이다. 아이를 맡았던 시설은 물론이고 대사관이나 출입국관리사무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잇단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 이후 정부가 관련 규정을 많이 손봐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이번 사건처럼 2017년 ‘취학 대상 아동 소재 파악 제도’ 시행 이전에 이미 방치된 아동의 소재는 부모의 협조가 없는 한 파악할 길이 사실상 없다. 강화된 규정을 적용한다 해도 아직 취학 연령에 이르지 못한 아동에 대한 관리 역시 방법이 없긴 마찬가지다.

관계기관의 조사를 보면 아동학대의 주체는 70~80%가 부모다. 계부나 계모뿐 아니라 번듯한 직업을 가진 친부모도 이런 일을 저지른다. 정부는 하루빨리 예방접종 경력이 없거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고, 주소지에 살지 않는 아이가 얼마나 되는지 전모를 파악해 국가의 관리범위 내로 편입시켜야 한다. 아동학대 부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관련법 개정도 시급하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떨고 있는 아이가 바로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