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국내 30대 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를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비상체제 구축을 선포했다. 문 대통령은 주요 그룹 CEO, 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의 상시소통체제와 장차관급 범정부지원체제를 마련해 단기적 근본적 대책을 함께 세우자고 했다. 일본이 우리 정부의 수출 규제 철회 요구를 거부한 채 경제 보복조치를 확대·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민관 총력 대응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9일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의 수출 규제를 긴급 의제로 올려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 보복조치를 취한다”며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일본은 “WTO 규정 위반이라는 (한국의) 지적은 전혀 맞지 않다”고 일축했다. 수출 규제를 대북 제재와 연관시킨 아베 총리의 근거 없는 발언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항변에도 “WTO에서 인정되는 안보 목적의 수출관리 제도의 적절한 운용”이라고 반박했다. 얼토당토않은 주장임에 분명하지만, 치밀한 준비의 흔적이 보여 예사롭지 않다. 대처에 신중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당장 시급한 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연쇄 피해가 우려되는 국가들에 대한 설득이다. 그런 점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고위 관리를 미국에 보낸 것은 시의적절하다.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애플·퀄컴·인텔 등 정보기술 업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반도체를 사들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의 조치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이들 업체도 그 여파를 비켜가기 어렵다. 그 글로벌 네트워크를 사태 해결의 발판으로 활용해야 한다.

비상시국인 만큼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당은 외교부 장관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있지만, 사태 해결이 먼저다. 문책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적전분열은 패망을 부를 뿐이다.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줄 아는 능력으로 정치적 신뢰를 쌓아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