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개가 ‘반려동물’로 받아들여진 시기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사회 수준이 높아지면서 개도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생명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동물복지 개념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부터다. 아울러 동물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이제는 개에 대한 사소한 학대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이전에는 상황이 달랐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지역에서는 여름철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개를 잡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일종의 연례행사였다. 물론 고기 맛을 좋게 한다며 몽둥이로 개를 마구 때리는 식의 잔인함에 얼굴을 돌리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동물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달랐던 때라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러다 보니 개고기 전문 시장도 번성했다. 경기도 성남 모란 가축시장과 부산 구포 가축시장, 대구 칠성시장, 서울 경동시장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모란 가축시장에서는 전성기엔 하루 평균 220마리, 연 평균 8만여 마리의 식육견이 거래됐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 형성돼 7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구포 가축시장도 1980년대에는 가게가 70여 곳이나 됐다.

그러나 전국 ‘양대 개시장’이라던 모란·구포 가축시장도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 2016년 성남시와 환경정비업무협약을 했던 모란 가축시장은 작년 말 마지막 점포가 영업을 포기하면서 개 도축 및 판매가 사라졌다. 구포 가축시장에서는 지난 1일 부산시와 상인 간 폐업을 위한 협약식이 열렸다. 19개 점포는 초복인 오는 12일 전까지 완전히 문을 닫는다.

구포 가축시장 폐업은 강제가 아니라 합의에 따라 진행됐다는 점에서 도심 환경정비사업의 모범 사례로 꼽히게 됐다. 모란 가축시장과 경동시장은 폐쇄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일부 상인이 업무협약 뒤에도 장사를 계속하는 바람에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반면 구포 가축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이 불경기에 다른 업종을 찾는다는 것이 무섭고 두렵기도 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생업을 포기하고자 한다”는 결단을 내리면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행정력 및 공권력이 개입되지 않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부산시와 북구는 점포가 철거된 자리에 공원과 반려견 놀이터, 반려동물복지시설 등을 세우기로 했다. 동물학대라는 오명을 썼던 구포 가축시장을 동물복지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몇 년 뒤 이곳에 온 사람들 입에서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듯하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