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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비자림’은 ‘우리가 사랑한 모든 숲’의 다른 이름 /이민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20 19:12:11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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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들려오는 비자림 소식에 숨이 멎는다. 저 숲을 어쩌나. 저 새들을 어쩌나.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자연 앞에서 어찌 이런 참담한 일을 저지르고 있단 말인가.

비자림 벌목 소식에 신경을 쏟고부터 ‘새벽’은 새들이 깨어나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시간이란 걸 알게 되었다. 무심히 지나친 일상의 공간에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숲의 생명체가 있다는 것과, 이 생명의 존재만으로 무참한 환경파괴를 중단시킬 갸륵한 억지력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개발과 보존 논쟁에서, 행정의 힘은 거대하고 시민의 힘은 미약했다. 숲을 지켜야 한다는 호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벌목이 집행됐다. ‘우리가 사랑한 숲이에요’라는 절규에도, 제주도정의 명령 아래 ‘작업자’들은 중장비와 전동 톱을 동원해 순식간에 숲을 초토화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겁먹고 숨죽일 거라 생각했을까. 잘린 나무들은 이쑤시개 쌓듯 길 한쪽에 쌓여갔다. 나무에 깃들어 살던 어린 새와 둥지도, 벌목과 동시에 죽음으로 내던져졌다.

연일 계속되는 참혹. 그때였다. 시민들은 톱날을 끌어안았다. 1초 전까지도 굉음을 내며 나무의 숨을 끊어놓은 회전톱날! 숲을 지상으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키던 강철 톱날을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비자림의 시취가 가시지 않은 그곳에서 함께 울던 사람들의 팔, 목덜미, 가슴에 칼날이 닿고서야 잠시나마 죽음의 벌목이 멈췄다.

저런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맨몸으로 숲을 지키고 조사에 나선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작년 이맘때, 남해여성회 인문학 수업을 맡고 선물로 받은 안전모라도 숲으로 보내야 했다. 비자림에서 생태환경과 생명체의 존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던 장영식 사진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제주 사진기록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온 작가에게 안전모를 전하며 ‘그 모자를 쓸 일이 없어야 하는데’ 하고 진심을 말해버렸다.

긴 시간, 숲을 지키며 목숨을 건 요구를 한 이들이 있어 벌목은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다행히 법정보호종과 비자림 생태환경에 대한 긴급 조사가 이뤄졌다. 부당한 행정적 조건 속에서도 숲을 보호하려는 국내외의 지지와 연대 행보는 연일 이슈다. 비자림 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연구 관계자들조차 놀랄 만큼, 조사 직후부터 높은 서식 개체 수를 기록하며 숲의 생명체들이 존재를 드러내었다.

안도와 불안은 동시에 몰려왔다. 행정의 관성은 오만과 나태함의 증거였던가. 자연은 오직 생명의 존엄에 깨어 있는 당신이 숲으로 찾아와 대면해야만 비로소 제 본연의 가치를 증명한다. 죽음으로 공존의 진리를 증명해 온 자연 섭리여. 인간의 편협을 넘어 생명존중의 지평을 증명해온 자연이여.

얼마 후, 숲을 지키고 있는 제주 작은서점 ‘달빛서림’ 책방지기가 팔색조와 붉은해오라기를 찾으러 풀잎색 중절모를 쓰고, 어떤 보호장비도 없이 숲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다. 숲에 세 들어 사는 곤충과 뱀과 새와 풀들의 안부와 찬란한 생명의 존재를 직접 확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진실을 들려주었다. “봐요, 우리가 사랑한 숲이에요!”
광폭한 중장비 기계의 벌목을 멈추게 한 것은 정치가도, 행정가도, 힘깨나 쓰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번식기를 맞은 숲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려 가장 느리게, 가장 천천히 그러나 누구보다 절박하게 그 생명들을 찾아 다닌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애기뿔쇠똥구리의 흔적을 찾아 이 순간 가장 힘없고 가장 낮은 흙에 엎드려, 죽은 나무 아래 무릎 꿇은 이들! 밤사이 둥지를 잃고 새끼를 잃고 이른 새벽에 숨을 곳을 찾았을 새의 길을 지킨 이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막 속에서 마침내 그 약하디 약한 존재의 울음소리를 포착한 숲의 사람들 말이다.

아스팔트 가운데로 쫓겨가던 반딧불이와 멸종위기 보호종들은 저희가 떠나갈 곳만을 응시하지 않았다. 떠나가기 싫은 지금 여기를 돌아보았으리니, 자연에 자비롭지 않았던 작업자들 대신, 자연의 편을 들어준 또 다른 ‘작업자’들이 바로 당신이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이 기도뿐이어서, 이오덕 선생의 유고시집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를 펼친다. 시 ‘아이들과 까치새끼’를 제주 비자림으로 가는 바람결에 실어 보낸다. 곧 섬으로 가겠다는 안부, 늦지 않겠다는 약속. 육지의 ‘작업자’가 보내는 한 조각 마음의 편지를 보낸다. 가장 약한 아이가 죽어가는 까치 새끼를 지키던 그 눈이 되어, 이제라도 우리 생명의 숲을 간절히 지켜보리라 다짐하며!

시인·낭독서점 詩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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