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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존엄사 인정 이후 10년 /신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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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6-10 19:23:02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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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중증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가 2004년 6월 대법원에서 살인방조죄로 유죄가 확정됐다. 그 판결은 의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 이후 환자가 원해도 치료를 중단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 되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있었는데, 그런 환자들을 집으로 보내주던 ‘퇴원(hopeless discharge)’이 불가능해졌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 환자가 대거 발생하였다. 그러다가 10년 전 2009년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년 넘게 의식불명 상태이던 할머니의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했다. 그 후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2016년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명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합법적인 길이 열렸다. 해당 법률안은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되었고, 올해 초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의하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간 3만6000여 명이 연명치료를 중단하였으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국민은 1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림 서상균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대다수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입법하는 의원은 표를 의식하고, 정책 당국은 종교계를 우려하고, 의료진은 법이 정한 대로 하겠다는 소극적 자세 때문에 아직 현장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3차 병원에 근무하는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죽어가는 삶을 마주하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죽어가는 삶이라고 해서 마냥 어둡고 쓸쓸한 것이 아니다. 그건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렸다. 죽음을 바로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분도 있었다. 말할 수 없었던 말을 할 수도 있고, 서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미안해하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죽음을 마주한 환자와 가족은 대부분 씩씩했고, 때로는 울기도 했지만 숨기지 않았다. 이런 게 좋은 삶이 아닐까.

얼마 전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가 이제 겨우 걸을 수 있게 된 고령의 할아버지가 콩팥이 나빠져 기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분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 말기 환자가 아니다. 다만 쇠약해지는 게 예정되어 있을 뿐. 진료실에서 할아버지에게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감정을 지우고 “약 잘 챙겨 드세요. 다음에 뵐게요”라고 해야 할까. 의사란 직업을 내려놓고 스스로 물어보았다. ‘이분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앞으로 나머지 삶을 어떻게 보내고 싶을까’. 나는 할아버지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알아도 이분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따로 시간을 내어서 그분과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닌, 할아버지가 여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겠다고….

“어르신. 2~3년은 괜찮겠지만 결국 돌아가시게 될 거예요. 지금은 투석을 받지 않으나, 투석을 받게 되면 여행 가시기도도 쉽지 않을 수 있어요. 따님과 손주들과 가족사진도 지금 찍으러 다니고, 할아버지를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손주들과 같이 여행을 가보세요. 만나야 할 친구와 친지들을 지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그리고 꼭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서 자식들과 같이 들으시고 작성해두세요. 그 문서에 어르신이 서명하기 전 가족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될 텐데, 그게 우리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몇 년 뒤 떠나시더라도 남은 가족도 어르신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건강하실 때 더 많은 추억을 만드세요.”
시간이 허락하는 한 환자가 죽음을 용기 있게 마주하도록 해주는 의사가 많아졌으면 한다. 그리고 의사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생명의 귀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생명의 귀함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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