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2002년 제1회 부산국제생선회박람회를 추진하면서 ‘생선회’의 영문명을 공모한 적 있다. ‘로 피시(raw fish)’나 ‘사시미(sashimi)’같은 표현이 있지만 우리 고유 생선회의 특징이 담기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결과 ‘회’ 발음 자체를 영어로 옮긴 ‘hoe’가 당선됐지만 곧 논란에 휩싸였다. 농기구인 ‘괭이(hoe)’라는 영어 단어와 표기법이 같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이 라이크 ‘회’(I like hoe)”가 “저는 괭이를 좋아해요”가 될 뻔한 ‘웃픈’ 사건이었다.

번역 과정에서 오역이 개입하거나 뉘앙스가 달라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용어가 ‘민주주의(democracy)’이다. 민중(demo)에 의한 통치시스템(-cy)으로, 군주제의 반대편에 있는 ‘민주정’ 혹은 ‘민주제’가 적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근대 문물 도입 당시 ‘주의(-ism)’라고 번역함으로써 ‘공산주의’ ‘사회주의’ 같은 이념이나 사상의 일종이 돼 버렸다. 문예사조상의 ‘자연주의(naturalism)’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전원문학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자연(nature)은 ‘본성’을 뜻한다. 사물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따진다는 의미에서 ‘본성주의’나 ‘본질주의’에 더 가깝다. 염상섭의 대표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이 계열에 속한다.

반대로 번역이 원어의 어감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 사례도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험프리 보가트의 대사는 말 그대로 옮기면 “당신을 보고 있다” 정도가 된다. 하지만 번역자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고 읊어 영화팬들의 뇌리에 길이 남는 명대사 한 구를 탄생시켰다.

해양수산부가 ‘어묵’의 영문명을 어제부터 새로 공모하고 있다. 현재 ‘피시 케이크(fish cake)’라는 표현이 있지만 생선살로 만들어진 어묵의 맛과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외국 영화인들이 해운대 모 주점에서 어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면서 ‘피시 케이크’라는 단어를 거부감 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떡(rice cake)처럼 생선살을 뭉쳐 만든 간식거리라는 설명을 그들은 잘 소화했다. 세계 음악팬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한국어로 떼창하는 세상이다. 외국인들이 그 의미만 이해한다면 굳이 손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번역이란 게 워낙 미묘해 자칫 개악이 될 수 있어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