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부산에서는 한 기초수급자가 숨진 지 7일 만에 발견된 일이 보도됐다. 2013년에는 숨진 지 5년 만에 주민에 의해 발견된 일도 있었다. 이처럼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자 2000년 이후 자치단체들은 많은 정책과 조례를 경쟁적으로 내고 예산과 인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고독사는 줄지 않고 관료조직만 확대됐다. 연고 없는 고독사가 전국적으로 2014년 1379명에서 2018년 2549명으로 증가한 것은 정책적 접근의 한계를 방증한다. 정책에 앞서 검토할 것은 복지관료제다.

그림 서상균

오랜 가부장적 관료제와 개발독재 정권이 만든 능률 우선 수직적 관료제가 결합된 한국관료제는 서구의 고객지향적 관료제와 달리 사회에 대한 우월적 지위와 계층성이 강한 관료제로 변질됐다. 절차의 목적화, 전시행정, 계량적 형식주의, 편의주의 같은 문제점이 고착되어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다. 문제는 관료제가 모든 공조직에 자기증식을 하여 고객(소외층)이 존재 목적인 복지조직도 일반행정처럼 관료제화됐다는 것이다. 사회적 형평이념이 목적인 복지행정이 능률 위주의 일반행정과는 친화적이지 않음에도 인사 등에서 일반관료제를 답습하는 문제점이 있다.

대안도 있다. 첫째, 복지조직은 고객지향적 조직이어야 한다. 실적보다 질적 내용이 더 평가되고, 외부 통제가 실질화되는 계급제 대신 수평적 조직이 되어야 한다. 능률성보다 고객 대응성이 구현되고, 찾아가는 복지가 실현되고, 담당공무원에 대한 고객의 교체요구권이 법제화됨으로써 ‘돌봄 민주주의’에 걸맞은 조직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채용방식의 개선이다. 복지공무원은 소외층을 현장에서 돌보고 의사결정권을 가지며 고독사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복지직 채용은 자격증 외에 일반행정과 같은 국어, 영어, 국사 등 교양과목과 응시자격 등이 적용된다. 이런 획일적 방식은 시험의 타당성을 해친다. 국가가 획일적 인사제도를 복지직에 강요하는 자체가 국가폭력이다. 복지직의 인사제도는 특성에 맞게 차별화돼야 한다. 이런 교양 과목들이 복지업무의 생산성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과거 세계화라는 상징조작으로 영어를 모든 시험에 부과한 것은 직종의 특수성을 무시한 상징폭력이며, 이는 복지직 적격자들을 쫓아냈다.

업무량이 많고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복지직에는 자격증 외에 소외층과 공감할 수 있는 연륜과 경험, 원숙한 심리적 대응 역량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그것을 갖춘 사회복지사라도 영어에 약하면 복지직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영어와 암기과목을 잘하면 18세도 복지직이 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는 상황이다. 과연 20대 초반이 소외층의 눈물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복지직만은 응시 하한연령도 올리고 소외층과 공감대가 강한 저소득층과 장애인의 구분 전형비율도 대폭 올릴 필요가 있다. 아울러 영어 과목을 없애고 무시험전형의 확대와 중·장년층 사회복지사의 일정 비율 이상 채용 확대도 필요하다. 또 자원봉사 경력이 많은 복지사는 면접만으로 채용토록 하고 생활관리사로서 ‘고객’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은 이들을 특별채용하는 등 돌봄 생산성이 현저한 헌신적 동기를 가진 복지사들의 진입 경로를 다양하게 모색해야 한다.

셋째, 사회문제에 독점관료조직만이 아닌 민영복지제나 EU가 제시한 사회혁신채권모델의 한국적 모색이 필요하다. 부산시와 계약을 맺은 민간기관이 혁신채권을 발행해 수급자 등에 대한 돌봄을 맡게 하고 성과보상을 하는 방식이다. 또한 수급자가 그들의 복지권을 실현함에 있어 관료형과 민영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가칭 ‘민영 주민센터’와 같은 민영복지제의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말하자면 복지의 경쟁체제다. 서비스 경쟁은 고객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넷째,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웃에 관심을 가질 것을 제시하나 익명화된 현대사회에는 실효성이 없다. 그보다 이웃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동기유발장치가 시장(市場)을 통해 제도화되어야 한다. 소외층은 시혜적 대상이나 돌봄 정치의 수단이 아닌 복지주권을 가진 시민이다. 그러므로 고독사 예방 정책의 결정에서도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동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