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도시철도로 출퇴근을 하며 다양한 삶의 단면과 마주한다. 겨울의 강짜가 남은 꽃샘추위에 곱은 손을 펴는 노년의 모습, 전동차에 피곤한 몸을 맡긴 중년의 자화상, 떨치지 못한 피로를 메고 시간을 재촉하는 청춘의 발걸음. 전동차 혹은 역사에서 으레 만나는 일상이지만 좀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철도산업에 근 40년을 몸담으며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다.

도시철도는 시민의 일상이 응축된 생(生)의 밀도가 높은 곳이다. 그러다보니 틈을 비집고 사건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경계가 느슨해진 지점에서 사고는 발생한다. 많은 시민의 이용 공간인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몇십 분씩 열차가 지연되는 등의 사고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고객 부주의로 인한 것이다. 개중에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마저도 이용수칙만 지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매년 부산도시철도에선 기초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가 10여 건씩이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더욱 안타깝다. 에스컬레이터 이용 시 손잡이를 잡지 않거나, 전동차를 타고 내릴 때 발밑을 확인하지 않거나, 출입문이 닫힐 때 무리하게 뛰어들다 발생하는 사고 등이 주를 이룬다. 기본만 지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에스컬레이터 사고는 당사자뿐 아니라 다른 이용객에까지 피해를 준다. 가파른 계단이 움직이는 탓에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2010년 3호선 연산역에서 일어난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대표적이다. 39명이 중경상을 입으며 부산도시철도 안전사(史)에 상흔으로 남은 이 경우도 이용객의 부주의가 원인이었다. 최근에도 서면역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던 70대 노인이 넘어지며 뒤따르던 시민 3명이 다쳤다.

승강장 발 빠짐이나 출입문 끼임도 마찬가지다.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족이 늘면서 승강장 발 빠짐 사고는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승객이 무심코 떨어뜨린 직경 8㎜짜리 구슬로 출입문이 멈춰 전동차가 출발하지 못한 적도 있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출입문 센서가 악용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닫히려는 출입문 사이로 발을 들이밀어 전동차를 세워두고서 일행이 탑승할 시간을 버는 경우가 그렇다.

‘상식’을 부쩍 생각하는 요즘이다. 상식(common sense)은 아주 오래된 단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이 교차되는 지점에 일종의 ‘공통감각’이 있다고 말했다.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의 오감(五感)을 비교하고 통합해 이성의 판단과는 또 다른 차원의 판단을 내린다는 것. 이렇게 시작된 공통감각에 대한 철학은 인간사를 관통해 왔다. 즉 상식은 시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감각이라는 뜻이다.

상식은 공감대 위에서 견고해진다. 사안의 필요성에 공감이 쌓이고 여론이 형성되면서 시대정신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상식은 힘이 세지만, 누구도 지키지 않는다면 허상으로 전락하기도 쉽다. 공사는 도시철도 이용수칙이라는 상식을 역설하려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역사 방송과 안내문, 자체 캠페인 등 시민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상식’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참여가 따르지 않는다면 공염불이 될 뿐이다.

도시철도 안전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1월 17일 부산교통공사 사장이 된 후 경영전략으로 ‘절대안전 도시철도’를 발표했다. 막연하리만치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결코 허상이나 이상(理想)은 아닐 터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손잡이를 꼭 잡고, 전동차에 타고 내릴 때만이라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거두며, 무리한 승하차를 자제하는 데서 절대안전 부산도시철도를 향한 큰 발걸음이 시작되리라 믿는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매일 같은 문장을 쓰는 구청 말단공무원 ‘그랑’이 등장한다. 날로 황폐해지는 가상도시 오랑의 혼돈 속에서, 카뮈가 ‘인간다움’의 전형으로 주목하는 게 바로 이 인물이다. 불확실성이 만연한 상황에서의 선(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다만 각자의 기본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안전한 도시철도도 다르지 않다. 서로의 배려로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철도를 구현할 수 있다. 시민 여러분의 협조가 절실한 때다.

부산교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