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베트남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 결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 협상 장소를 베트남 하노이로 정한 것은 협상학적으로 분석해볼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북한이 1950년 수교 이후 사회주의 국가로서 우호관계를 맺은 최우방국 중 하나가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전쟁 때는 북한에서 군사 파병 및 물자보급까지 지원하였고, 김일성 주석이 두 차례나 방문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하노이에는 북한 대사관이 위치해 김정은 위원장을 위한 의전과 경호에 만전을 기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미국에게도 베트남은 각별한 나라이다. 악몽 같은 베트남전쟁 이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1995년 마침내 국교는 정상화되었다. 특히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 년간 미국과 대치하다가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사회주의 정권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번영을 이룬 상징적인 사례인 베트남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협상에 있어 장소가 주는 임팩트는 생각보다 크다.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지에 따라 동일한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간다. 그렇다면 협상 장소는 어디로 정하는 것이 좋을까? 안방에서 협상하는 것이 유리할까?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제3의 장소가 유리할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안방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본인이 가진 인적·물적 자원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주는 장점도 있다. 협상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협상을 진행하면, 상대방으로서는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으며 거래를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상대방의 사무실이나 생산시설에 직접 방문하면 평소에는 파악할 수 없는 정보들을 얻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제3의 장소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양측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면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도 있고, 어느 일방의 장소에서 협상을 진행할 때 비밀 유출 등이 우려되거나 협상력의 무게중심이 기울게 될 우려가 있다면 제3의 장소를 협상지로 정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1차 회담을 싱가포르에서, 2차 회담을 베트남에서 진행하였는데, 상대국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애초에 제 3국 중 거리와 안전, 의전, 기밀유출, 협상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장소로 결정한 것이다.

협상 장소뿐만 아니라, 심지어 협상 테이블과 자리 배치까지도 협상에 영향을 미친다. 사각 테이블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느낌을 주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측면이 있는 반면, 원형 테이블은 적대적인 느낌을 줄이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원만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 정상회담 테이블을 보면, 원형 테이블을 배치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중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결국 협상이 결렬된 이튿날 확대회담 당시의 테이블을 확인해보면, 사각테이블의 대치구도에서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미국에서는 4명이 참석하고 북한에서는 3명이 참석한 기형적 구도로 협상이 진행되어 협상 환경 자체에서 이미 상당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유리한 협상을 이끌기 위해, 협상 장소 선정은 물론이고 협상 테이블의 모양, 참석 인원, 배석자의 자리 배치, 심지어 의자 높이 등 세세한 부분의 결정까지도 치밀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변호사·법무법인 율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