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근무예비역 제도’란 전쟁과 같은 국가비상사태 시 물자수송 선박을 운항할 선원 인력을 확보하려고 관련 교육기관의 학생은 졸업 후 5년 이내 3년간 승선근무하면 군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인데 징병 인구 감소로 지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는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섣불리 손대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선원 인력에 크게 의존하는 해운산업은 국가 산업 경제와 비상사태 시 물자수송을 위하여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명백한 공익성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징집 인구도 줄고 그에 따라 지금까지 시행되어 온 대체복무제도를 손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을 감안해야 하는 고민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해운이 한 국가의 경제와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선박은 경제와 정치사회적 활동에 이용되어 왔다. 육지와 육지 사이의 교역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항해를 하고 새 땅을 개척해야 했다. 이를 위해 언제나 전쟁이 준비돼 있었다. 먼 옛날 서구 바이킹이 남하하며 해양 팽창했던 것과 로마제국이 막강한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해운과 함께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다 이 같은 해양의 특성 때문이다. 암흑의 시대로 기억되는 중세에도 북해와 지중해 해역에선 해상교역과 전쟁이 그치지 않았고,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동방으로 가는 길이 열리자 수많은 선박과 선원인력이 새 바다 새 땅을 찾아 떠났는데 우리는 이 시대를 대항해시대라고 부른다.

대항해시대에 수많은 항해와 탐험과 교역과 전쟁이 수행되었다. 그에 따라 세계의 경제사회 지형도는 그들의 설계도에 따라 그려졌다. 오늘날 세계에 떠다니며 위세 과시에 여념이 없는 강대국들의 전함들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이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은 말할 것 없고 북극해 남극해에서 항로의 길목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 강력하고 예민한 과학문명의 더듬이를 동원하며 일촉즉발의 위기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 강대국의 강력한 해양력의 근저에는 자국이 보유한 막강한 해운 선대가 있고, 그것을 움직이는 선원인력과 우리의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와 비견한 전시 선원인력 확보 제도가 있다.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는 6·25전쟁의 산물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전쟁이 나고 얼마 되지 않아 공산군이 남한 전역을 장악하자 국방부는 당시 대한민국 국적선 20여 척을 선원과 함께 징발하여 해군작전에 편입시켰다. 이후 전쟁 중인 한반도의 연안항로 물자수송과 상당 부분의 병력 및 민간인 수송이 해상운송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때 만약 우리에게 준비된 선박과 선원인력이 없었다면 이마저 외세에 의존해 할 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징병된 청년 선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이때 문제가 생겼다. 병무청에서 군 입대통지서가 발부된 것이다. 불만스럽기 짝이 없는 나랏일이지만 관련법이 미비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갔다 와야 했다. 이에 병무청에 민원이 제기되었음은 상상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후 해운계와 해군 간에 논의가 오갔고 이중 징집의 모순을 해결하는 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다. 드디어 1960년에 오늘날의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에 해당되는 ‘해군예비원령’이 제정되어 선원인력은 ‘평시에는 선원, 전시에는 군인’이라는 매우 특이한 사회적 신분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승선근무예비역 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징병 인구가 줄고 있는 현실에 이 제도는 손을 보긴 보아야 할 듯하다. 그런데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를 손보게 되면 해양주권이 걱정이다. 바다에 사람이 나가지 않으면 그 바다는 버림받은 바다가 된다. 조선이 바다를 외면하여 망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지 않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꺼려하는 외롭고 고된 선상근무도 해야 하고 병역 의무도 마쳐야 한다면 누가 선원이 되려 하겠는가? 이는 해운계 교육기관에 다니는 재학생들의 입학동기에 대한 통계에서도 잘 나타나는 사실이다. 정부는 ‘형평성’의 함정에 진력하다가 ‘공익성’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간곡히 당부한다.

부산해사고 항해과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