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항만자치와 재정분권을 주제로 한 기획기사 취재차 독일 함부르크시를 방문했다. 부산이 추진 중인 북항 재개발의 모델이 된 함부르크의 하펜시티에 가까워지자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펜시티의 랜드마크 ‘엘필하모니(Elbphilharmonie)’다. 함부르크항의 100년 넘은 빨간색 벽돌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 세운 콘서트홀이다. 무빙워크를 타면 엘필하모니 로비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데, 콘서트홀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함부르크항의 전경이 기가 막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온 김에 함부르크의 랜드마크를 확실히 즐겨볼까 싶어 저녁 공연 티켓을 사러 매표소를 찾았더니 이미 매진됐단다. 반환 티켓이라도 구해보려다 대기줄이 너무 길어 포기했다. 이 이야기를 다음 날 만난 함부르크시의회 마르코 비스너 의전관한테 하니, 그는 “클래식음악 광팬인데 지난 3년간(엘필하모니가 개관한 이래)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년 단위의 시즌 시작 때 광클(인터넷 예매)을 해야 겨우 표를 얻는데, 나는 나이 든 세대라 광클이 힘들다”고 답변해 한참을 웃었다.

하펜시티의 엘필하모니처럼 부산에도 북항에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선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지난달 25일 공사 재개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민선 7기 들어 올스톱된 오페라하우스 공사는 거의 5개월 만에 다시 시작된다. 오 시장은 공사 재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부산항만공사가 건립비 800억 원을 분담하기로 해 공사를 재개하기로 했다. 건립비가 총 2500억 원인데 롯데가 기부한 1000억 원과 항만공사의 800억 원을 뺀 나머지 700억 원만 시가 확보하면 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800억 원이나 되는 나랏돈을 단시간 내 확보한 것은 큰 성과다. 하지만 시장의 발표가 한낱 ‘건물 짓기’에 그쳤다는 게 문제다.

애초 건립을 중단시킨 이유는 건립비뿐 아니라 눈덩이처럼 불어날 운영비(연간 250억 원가량)를 걱정해서다. 과연 매년 돈이 없어 허덕이는 부산시가 그 큰 예산을 감당할 처지가 되겠느냐는 거였다. 추산 운영비는 한 해 부산시 문화예술 전체 예산(올해 1869억 원)의 13%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하지만 시장은 “앞으로 운영위원회를 꾸려 살펴보겠다”는 준비 안 된 답변만 내놨다. 게다가 시민공원 내 국제아트센터나 문현금융단지 내 뮤지컬극장 등 유사 공연시설이 오페라하우스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다. 공연시설 중복 지적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아트센터를 북항으로 옮겨와 오페라하우스와 합쳐 짓는다는 안건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폐기됐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건립 중단 이유였던 우려와 의문,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게 없다.

그래놓고 시장은 “지난 5개월간 시민, 지역 문화예술인과 치열한 논의를 했다”고 말해 반발을 샀다.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는 “도대체 누구와 소통했다는 말인가.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고 반대 성명을 내는 등 오페라하우스는 공사 재개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급기야 오페라하우스(오페라 전문공연장)를 짓겠다고 해놓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앞뒤 안 맞는 발언까지 했다. 치열한 논의가 바탕되지 않았음을 부산시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엘필하모니도 건립 당시에는 시장이 여러 번 바뀌었을 정도로 ‘뜨거운 감자’였다고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건립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 그만큼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공연시설을 짓는 문제는 그 지역민의 민감한 관심사다. 논란의 폭풍 속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건 ‘콘텐츠’다. 엘필하모니가 수많은 지역사회의 논란을 딛고, 함부르크 시민의 사랑을 받은 건 단순히 건물이 멋져서가 아니다. 껍데기(랜드마크)뿐 아니라 엘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공연(콘텐츠)이 훌륭하기에, 3년이 가도 시민이 표 한 장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얻는 이유다. 하물며 현재 계획상 부산 오페라하우스에는 상주단체조차 없다. 콘텐츠를 만들어낼 공연단 운영에 관한 마스터플랜 없이 건립이 재개된다. 시민이 품은 이 찝찝함을, 앞으로 만들어질 운영위가 해소해줄 수 있을까. 아니 반드시 해야 할 거다.

의료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