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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칼럼] 민심을 모으려면

일방적 승복 강요로 빛 바랜 '국민 통합'

새해엔 열린 자세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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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문다. 또 한 번 시간의 매듭을 지어야 할 순간이다. 지난 시간을 헤아려 보고 새로운 시간을 예비해야 하지만, 역사의 강 저편으로 흘러간 기억은 구차스럽고 다가올 미래는 아득하기만 하다. 회한과 자괴감이 마른 삭정이가 돼 가슴을 헤집는다. 눈앞에 놓인 시간의 행로에는 어둡고 삭막한 한겨울의 그림자가 짙다.

어찌 보면 지난 한해는 '국민대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던 박근혜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다.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다르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틀리다고 서로 갈등하면서 쌓아왔던 불신의 벽을 헐어내고 타협하고 화해하는 기대로 설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알아채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정부가 내걸었던 '국민통합 100% 대한민국'의 슬로건은 절대적 수치만큼이나 위험한 것이었다. 대통합의 기치에는 승자에게 승복하라는 압박이 펄럭였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통합이 시작된다는 상식은 애당초 없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섞어서 새로운 접점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내가 이겼으니 내 뜻대로, 내 방식대로 하겠다는 것은 독선이다. 일방적인 통합은 탕평인사의 약속을 외면하면서 시작됐다. 이념편향, 지역편중에다 문제투성이 인사들까지 중용하면서 파열음을 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치판엔 파란이 일었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야 할 정치는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정쟁으로 전락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대선공약은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물어졌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정쟁의 여파로 우리 사회 또한 극단적으로 양분되면서 통합은커녕 더욱 견고한 불신의 벽을 세웠다. 정치가 국민을 통합하는 게 아니고 분열시킨 셈이다. 정치의 정점인 대통령은 자신과는 무관한일인 양 오관불언하면서 남 탓을 했다.

독선과 오만의 정치, 일방적 통합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뒷걸음질치게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이단으로 몰아붙였던 중세의 종교 재판정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사회 도처에서 나타났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것을 대선불복, 종북으로 매도한다. 야당의 한 의원이 대통령 사퇴를 언급했다고 여당 의원들이 떼를 지어 융단폭격을 가했다. 한때 대통령을 부정한 채 조롱하고 탄핵까지 서슴지 않았던 자신들의 전비는 까마득하게 잊고. 충성경쟁이라도 하듯이 일사불란한 대통령 보위 행각을 지켜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이성을 잃은 정치 풍토가 우리 사회 곳곳에 전염되고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한 문예지가 소설 속 화자가 유신을 비난하는 대화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작품 게재를 거부했다. 또 종편뉴스가 이석기 사건 수사와 관련해 반론을 인터뷰했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중징계를 내렸다. 보수신문과 종편이 쏟아내는 일방적 보도와 막말논평은 못 본 척하며 그나마 공정보도에 애쓰려는 노력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여느 종편처럼 종북몰이에 나서지 않은 괘씸죄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이러니 일각에서는 지금이 유신시대와 다를 게 뭐냐는 한탄이 나온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얼마 전 "저항세력에 굽히지 않는 것이 불통이라면 임기 내내 불통할 것"이란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 정부가 과연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퇴행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이 정부가 꿈꾸는 통합과 전제정치나 파시즘 아래서 이뤄졌던 억압적이고 기만적 국민통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국민들의 비판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협량함으로는 어떤 통합도 이룰 수 없다. 부디 새해에는 열린 자세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받들 수 있기를 빌어본다. 바로 그게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다. 국민들도 더는 무기력감을 호소하면서 현실을 자포자기해서는 안 되겠다. 이웃과 사회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숱한 희생을 치르며 획득한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가 불통의 정치에 가로막혀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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