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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소리 나는 작품도 패들 번쩍번쩍…‘초록 호박(쿠사마 야요이 作)’ 22초 만에 1억 여원 껑충

미술품 경매의 세계…서울옥션 부산세일 가보니

  •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   입력 : 2022-10-05 19:28:42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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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북적… 전화·온라인 참여도
- 이우환·김창열 작품 등 70여 점
- 1점당 평균 1분 만에 팔려 나가
- 쿠사마 야요이 作 19억 대 낙찰

- MZ컬렉터에게 투자 대상된 미술
- 작년보다는 소비 열풍 잦아 들어
- 시장 중장기적 안정화 대책 필요

“3400만 원 최고가입니다. 세 번 호가합니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이 최근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1년에 한 번 여는 ‘서울옥션 부산세일’ 현장 경매를 진행했다. 여주연 기자 yeon@kookje.co.kr
740만 원에서 시작한 그림 경매가가 순식간에 3400만 원까지 뛰어올랐다. 경매사 추정가 1500만 원보다 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3400, 3400… 3600!!” 경매사가 ‘3400’을 세 번 채 부르기 전에 더 높은 금액의 응찰자가 등장했다. 객석에선 낮은 탄성이 번졌다.

“3600만 원 최고가 입니다. 세 번 호가합니다. 3600, 3600, 3600. 낙찰입니다! ○○ 선생님에게 3600만 원 낙찰, 감사합니다. 경합에 뜨거운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근 열린 ‘서울옥션 부산세일’에서 경매번호(LOT번호) 3번으로 나온 이건용 작가의 그림 ‘생명 93-1’이 시작가에서 5배 가까이 뛴 금액에 새 주인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신체 드로잉으로 유명한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의 1993년 구작(舊作)이라는 점이 컬렉터의 소장 욕구에 불을 지핀 것. 이 한 점이 숨겨진 가치를 인정받는 데 걸린 시간은 2분30초면 충분했다.

서울옥션 부산세일은 미술품 경매사가 여는 유일한 부산 현장 경매로, 2017년부터 1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서울옥션 측은 “부산은 트렌드 반영이 빠른 도시이다. 부산 경매에서는 전 세계 컬렉터의 사랑을 받는 해외 ‘블루칩’ 작가 또는 해외 작가를 중심으로 소개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매장에는 70여 명의 컬렉터가 객석을 가득 메웠고, 현장을 찾지 못한 이들은 전화와 온라인으로 경매에 참여했다. 앞서 가나부산 갤러리가 경매에 부칠 작품을 선보인 전시에도 하루 평균 400여 명이 찾아 높은 관심을 실감케 했다.

이날 경매품으로는 쿠사마 야요이, 요시모토 나라, 박수근, 이우환, 김창열, 박서보 등 세계적 작가와 조르디 커윅, 하비에르 카예하 등 해외시장 ‘라이징 아티스트’의 작품이 고르게 올랐다. 최고가는 단연 쿠사마 야요이의 ‘초록 호박’. 18억 원으로 시작한 경매가는 겨우 22초 만에 19억5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초록 호박’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이 가격에 낙찰됐다.

이날 경매에 오른 작품은 총 74점. 이들이 새 주인을 찾거나 유찰되는 데는 7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점당 평균 1분에 팔려나간 셈이다.

■몸집 커진 경매시장… 밀레니얼 세대가 견인

쿠사마 야요이 ‘초록 호박’. 서울옥션 제공
미술시장은 1차 시장과 2차 시장으로 나뉘는데, 경매는 2차 시장에 해당한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는 게 아니라 소장자나 기관이 내놓은 작품을 거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옥션과 K옥션이 경매시장의 90% 이상을 양분하는 구조다. 1차 시장은 갤러리를 떠올리면 된다. 일반적으로 갤러리는 소속 작가의 작업을 전시하고 컬렉터와 다이렉트로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술시장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호황기를 누리면서 국내 경매시장도 최근 몸집을 크게 불렸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21년 국내 경매사의 낙찰액 총합은 약 3294억 원. 전년도 1153억 원보다 3배에 달하는 규모이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1565억 원보다도 배 넘게 증가했다. 가파른 외형성장은 올 상반기까지도 이어졌다. 2022년 상반기 총 거래액은 약 144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약 1438억 원이라는 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화폐 가치의 하락과 현금 유동성이 흘러 넘치면서 자산 가치를 지닌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많은 신규 고객이 미술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미술품 가격을 끌어올렸다. 특히 지난해 미술시장은 ‘아시아’와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하는 특징을 보였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하더라도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한국은 15위를 차지했는데, 2021년에는 중국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의 자리(6위)를 한국이 차지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미술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술시장에 신규 고객의 유입이 증가했는데, 이 기간 밀레니얼 세대가 미술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 고객층이 됐다는 리포트도 나왔다. 서울옥션 김현희 수석경매사는 “최근 몇 년 새 신규고객이 크게 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30, 40대의 참여가 많이 늘었다. 지금 미술시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은 경매시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성 세대와는 다른 시각으로 미술시장에 접근하는데 ‘미술시장의 결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감상보다는 투자의 목적으로 미술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저평가된 블루칩 작품을 찾는 이유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에 노출되고 다양한 국내외 문화를 접하며 성장해왔기 때문에 해외 작가와 작품, 거래 정보에도 관심이 높다. 김 수석경매사가 “우리보다 정보가 더 빠를 때도 있다”고 할 정도다.

온라인 경매의 활성화도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가 바꿔놓은 풍경이다. 특히 온라인 거래를 살펴보면 우국원 김선우 문형태와 같은 30, 40대 젊은 작가의 작품이 선호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캐릭터화 된 인물이나 동물이 등장하거나 익살스럽고 경쾌한 이야기, 채색이 화려하고 아이디어가 신선한 작품이 이들의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모습이다.

■3분기 경매시장 주춤… 경기침체 여파

본경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이벤트 경매로 나온 작품을 직원이 선보이고 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미술시장은 올해 3분기 들어서면서 변곡점을 맞고 있다.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439억4100만 원)이 지난해 동기 대비 46% 수준에 그치면서 위축된 분위기가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경매시장에 출품된 6404점 중 3880점이 낙찰돼 낙찰률은 60.59%를 기록했다. 경매시장에서는 낙찰률 70%를 기준으로 시장 분위기를 가늠하고 있다.

‘서울옥션 부산세일’에서도 낙찰률은 68.5%에 그쳤다. 멜 보크너, 하비에르 카예하, 조르디 커윅, 아담 핸들러, 에드가 플랜스 등 최근 미술시장에서 주목 받았던 해외 작가 작품이 주로 유찰됐다. 김 수석경매사는 “국제적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가 미술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너무 뜨거운 ‘불장’이기도 했다. 경합도 치열하고 낙찰률도 90%를 넘어섰다”며 “지난 2년간 급격히 파이가 커진 만큼 시장을 다지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3분기에는 프리즈서울이라는 호재가 있었음에도 경매시장 실적이 지난해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금리인상과 함께 MZ세대의 미술 소비 열풍이 잦아든 것이 경매시장 위축의 요인”으로 지적했다.

이 기간 낙찰총액 순위 1위는 쿠사마 야요이(약 63억 원)였고 이우환(20억6000만 원) 이배(16억1000만 원) 김창열(16억1000만 원) 박서보(14억3000만 원) 등이 뒤를 이었다. 김 이사장은 “이른바 ‘블루칩’ 작가에 대한 수요가 같은 시기 열린 아트페어인 키아프와 프리즈서울에 쏠림 현상으로 나타난 것 같다”면서 “그만큼 미술시장의 수요층 기반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미술시장 소비문화의 안정화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 온라인경매 회원가입만 하면 쉽게 응찰…공동구매도 가능

■ 문턱 낮아진 미술경매

- 구매수수료·위약금 청구 유의해야

온라인경매가 미술경매 문턱을 낮추고 있다. 사진은 ‘서울옥션 부산세일’ 온라인 응찰 페이지.
매체에서 접하는 미술경매는 수억 원, 수십억 원의 작품이 최고가를 경신하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최근엔 온라인 경매를 중심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취향을 고려한 작품을 내놓거나 아예 ‘0원’에서 시작하는 경매가 등장하면서 문턱이 매우 낮아졌다. 그림이 투자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여러 명이 공동 구매하는 ‘조각 투자’도 나타났다.

멀게만 느껴지는 경매,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현장 경매는 현장 서면 전화 온라인으로 참여 가능하다. 서면과 전화는 경매 관련 제반 업무를 맡는 스페셜리스트를 통해 참여할 수 있고 온라인은 사전 등록한 정회원에 한해 응찰 권한이 주어진다. 서울옥션의 경우 20만 원을 내면 1년간 정회원 자격을 얻는다. 현장 경매와 전시는 누구나 무료 관람이 가능해 직접 찾아가는 것도 미술경매와 가까워지는 좋은 방법이다. 온라인 현장 중계는 정회원이 아니더라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구매 수수료는 경매사마다 다른데 서울옥션은 낙찰가의 18%를 부과하며 부가세는 별도이다. 최근 ‘서울옥션 부산세일’에서 가장 높은 금액인 19억5000만 원에 낙찰된 쿠사마 야요이의 ‘초록 호박’의 경우 구매 수수료는 무려 3억5100만 원이 된다.

호기심에 응찰을 해서는 곤란해질 수 있다. 낙찰을 취소할 경우 낙찰가의 30%가 위약 수수료로 청구되기 때문이다.

현장 경매가 월 단위로 열린다면 온라인 경매는 매주 열린다. 가격도 평균 100만 원선으로 현장 경매보다 훨씬 접근하기 쉽다. 국내 대표 경매사인 서울옥션 케이옥션도 매주 온라인 경매를 여는데 유료 정회원이 아니더라도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서울옥션은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는 제로베이스(0원에서 시작)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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