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원 세컨드’ 필름시대 향수와 엄혹한 역사의 공존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02-16 19:26:12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장예모는 이전에 35인의 감독이 참여한 칸 영화제 60주년 기념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7)에서 단편 ‘영화 보는 날’을 맡아 연출한 바 있다. 중국 내륙의 어느 시골 마을에 필름 영사기가 들어오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 마을 아이들은 축제 분위기를 만끽한다. ‘원 세컨드’(2020)는 이 3분짜리 단편의 아이디어를 기본적인 골격으로 삼아 확장한 영화 같다. 정체 모를 남자와 꾀죄죄한 몰골을 한 소녀는 사연과 이유를 숨긴 채 마을 회관에서 상영될 영화의 필름을 노린다. 우여곡절 끝에 분실되고 훼손된 필름은 겨우 회수돼 상영되면서 종국에 남자와 소녀는 서로 원하던 바를 이룬다.
영화 ‘원 세컨드’ 스틸 컷.
필름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디지털 시네마가 대세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시점에서, 영화가 재현하는 과거 중국 시골의 풍경은 어렴풋이 그리움을 자아낸다. 길바닥에 질질 끌려 먼지를 뒤집어쓰고 망가진 필름을 세척하고자 온 마을 주민이 달려들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관은 영화 관람이 일상다반사가 아닌 축제 날이자 특별한 공동체적 경험이었던 아날로그 필름 시절의 한 풍경을 정성을 들여 재현해낸다. 구시대의 유물로 사멸한 필름 영사기의 작동방식을 영사기사의 손길을 짚어가며 꼼꼼히 담아내는 분절된 컷들의 몽타주는 구닥다리 필름에 대한 아련한 향수이자 애틋한 사랑의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시네마 천국’(1988)을 연상하게 하는 서정과 평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엄혹하고 소름 끼치는 역사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파시즘은 정치를 예술화시킨다. 반면 공산주의는 예술을 정치화한다’는 벤야민의 지적처럼 마을 주민이 단체 관람하는 영화 ‘영웅아녀’(1964)는 ‘항미 원조’라 칭하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미화한 냉전기의 국책 선전 영화이고, 주인공 남자가 집착하는 딸의 모습이 찍힌 필름 역시 정권을 홍보할 목적으로 배포된 뉴스릴이다. 집단주의로 억압된 시대의 프로파간다가 개인의 감정을 쏟을 유일한 창구라는 이 처절한 아이러니는 영화의 감정을 더욱더 깊은 역사의 질곡으로 끌어들인다.

남자의 정체는 노동개조소를 빠져나온 탈옥수다. 그의 죄목은 ‘조반유리(造反有理 : 모든 반항에는 이유가 있다)’를 구호로 내세운 홍위병의 파벌인 조반파의 대장과 싸웠다는 것이다. 촌 동네에는 여파가 밀어닥치지 않았지만, 바깥 세상에서는 아직 문화대혁명의 참극과 혼란이 휩쓸고 있다. 거지꼴로 돌아다니던 류가네 집 딸은 2년 후에는 알아보기 어려우리만치 단정한 차림을 하고 석방된 남자를 마주하는데, 이는 그 사이에 있었을 마오쩌둥의 죽음과 문화대혁명의 종식, 그리고 개방정책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결말에도 일말의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남자는 어째서 바로 딸을 만나지 않고 류가네 딸을 찾아가 사막에서 잃었던 한 조각의 필름을 구하려 한 것일까? 어쩌면 그의 딸은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이미 희생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은은하고 완곡하게 전달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선연한 심상으로 역사의 비극을 상기케 했던,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현실을 환기시켰던 ‘5일의 마중’(2014)의 교묘한 화술은 ‘원 세컨드’에서도 다시 발휘된다. 이 완곡함을 당장 생존을 위한 비겁한 타협이라 비판하는 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살아남아 언젠가 시대를 증언함으로써 복수할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영상]초등학교가 문화 공간으로...‘하하호호 콘서트’ 현장
  2. 2재능기부는 이렇게...대한민국 명장들의 봉사현장
  3. 3코로나19 재유행인데 급증 미미..."정점 예상보다 빠를 수도"
  4. 4사우디 16강 두고 폴란드와 격돌… 빈 살만 왕세자 포상은?
  5. 5양정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구속
  6. 6양산시 웅상 경보 3·4차 입주민,"경남도 장흥교 일방적 이설 추진" 집단반발
  7. 7벤투호 '만찢남' 조규성, 가나 수비망 찢을까
  8. 8주한미군에 우주군사령부 만든다…'北ICBM 위협'에 서둘러
  9. 9부산 터 둔 게임위에 무슨 일?...각종 의혹에 감사원·검찰까지
  10. 10화물연대 파업 사흘째 '업무개시명령' 초강수?..."대화 가능"
  1. 1주한미군에 우주군사령부 만든다…'北ICBM 위협'에 서둘러
  2. 2민주화 이후 첫 장성 강등...고 이예람 중사 사건 '부실수사' 책임
  3. 3TK신공항 변수에 놀란 부산 여야 ‘가덕신공항 속도전’ 주문
  4. 4“동백전 국비 안 되면 시비 확대를” 부산시의회 촉구
  5. 5“해볼 만해졌다…엑스포 반전 드라마 쓰겠다”
  6. 6[속보] “기니만서 억류된 韓유조선 하루만에 풀려나…부산출신 2명 탑승”
  7. 7검찰 수사 文정부 고위층으로 확대…야권인사 줄소환에 민주당 반발
  8. 8국회도 파리서 본격 유치전
  9. 9서아프리카 해적 억류 선박 풀려나…부산시민 2명 탑승
  10. 10野 “합의안 파기한 정부 책임”…당정 “사실상 정권퇴진운동, 엄정 대응”
  1. 1화물연대 파업 사흘째 '업무개시명령' 초강수?..."대화 가능"
  2. 2부산 경유 가격, 7주 만에 하락…휘발유와 격차는 여전
  3. 3전력 도매가에 '상한' 둔다…전기료 인상 압력↓ 가능성
  4. 4물류가 멈췄다…갈 길 바쁜 경제 먹구름(종합)
  5. 5“최종금리 연 3.50% 의견 다수…금리인하 논의 시기상조”
  6. 6세계 스마트도시 평가 부산 22위, 사상 최초로 서울 제쳐 국내 1위
  7. 7고비 넘긴 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기한 2026년까지 연장
  8. 8'中·日 표심 잡는다'…'안방' 부산서 2030엑스포 집중홍보
  9. 9정부, 화물연대 파업 '비상대책반' 가동…"피해 가시화"
  10. 10정부 '재정비전 2050' 추진 공식화…"올해 나랏빚 1000조"
  1. 1재능기부는 이렇게...대한민국 명장들의 봉사현장
  2. 2코로나19 재유행인데 급증 미미..."정점 예상보다 빠를 수도"
  3. 3양정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구속
  4. 4양산시 웅상 경보 3·4차 입주민,"경남도 장흥교 일방적 이설 추진" 집단반발
  5. 5부산 터 둔 게임위에 무슨 일?...각종 의혹에 감사원·검찰까지
  6. 6총파업 사흘째…'셧다운' 위기 속 화물연대-국토부 28일 교섭
  7. 7오늘 부산 울산 경남 기온 평년 상회...경남 내륙은 0.1㎜ 미만 비
  8. 8부산신항서 정상 운행 화물차에 돌 날아와 차량 파손
  9. 9부산 인권단체 66곳 중 활동가 1명 이하 45.5%
  10. 10양산시, 역사자원 접목 등 다양한 문화 관광사업 추진 및 관련 인프라 확충 호응
  1. 1사우디 16강 두고 폴란드와 격돌… 빈 살만 왕세자 포상은?
  2. 2벤투호 '만찢남' 조규성, 가나 수비망 찢을까
  3. 3조별리그 탈락 벼랑 끝 몰린 전통강호 독일·아르헨티나
  4. 4호주 튀니지 잡고 16강 다가섰다… 아시아 돌풍 한국까지 가나
  5. 5카타르 "월드컵은 끝났지만, 축구는 계속" 사우디 "겸손하자"
  6. 6한국 가나전 완전체로 출격 기대
  7. 7中 네티즌의 절규 "왜 우리는 못 이기는 것인가"
  8. 8손흥민 마스크 투혼 빛났다…韓, 우루과이와 무승부
  9. 9서튼 일본 이어 한국 승부 적중, 한국 16강도 맞추나
  10. 10월드컵 1차전 끝 네이마르 케인 발목 부상에 운다
우리은행
반우용의 월드컵 원정기
대표팀 뒷이야기, 생생하게 전해드릴게요
롯데 자이언츠 2022 결산
발이 따라가지 못한 ‘디테일 야구’
  • 신춘문예공모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