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 염색제에 꽃 줄기째 담가
- 누름판에 고정한 뒤 말리면 끝
- 금방 시드는 생화 영구적 보관

- 조팝 등 잎 평평한 형태가 수월
- 사과·나무껍질 등도 재료 활용

- 국내 유일 구례 한국압화박물관
- 600점 작품 전시… 체험도 즐겨

우연히 발견한 네잎클로버나 떨어진 꽃잎을 책 사이에 끼워 말려본 적 있는지. 대지를 떠나 책장으로 이주한 생화는 곧 변색되고 바스러진다.

	압화로 꾸민 유리컵. 해든프레스플라워 제공

압화(꽃누르미) 공예를 통하면 소중한 추억이 깃든 생화를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압화는 야생화의 수분을 제거해 눌려 말린 꽃 예술로, 약품 처리 같은 인위적 과정과 누름 건조를 통해 색깔과 형태를 식물의 원형에 가깝도록 유지할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식물학자 루카기니가 ‘식물 표본’을 제작한 걸 시초로 본다. 책갈피 부채 거울 액자 등 생활소품 어느 분야에나 활용할 수 있고, 실력이 쌓이면 풍경화나 정물화 등으로 확장 가능하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전용 누름판에 1, 2일 건조

	압화로 꾸민 부채(위), 손거울. 해든프레스플라워 제공

압화를 만들려면 우선 식물과 누름판(압화매트), 천연 염색제가 필요하다. 천연 염색제를 쓰면 꽃의 색을 선명히 하고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방법은 쉽다. 염색제가 꽃의 줄기를 타고 저절로 꽃잎을 물들이기 때문에 준비한 염색제에 꽃을 줄기째로 담그기만 하면 된다. 염색된 후에는 잎과 줄기 등을 분리해 압화 전용 누름판 사이에 펼친 후 고정한다. 하루 이틀 정도 말리면 수분이 빠지고 선명한 압화가 완성된다.

한국압화교육문화협회(프레스코21) 소속 회원인 양은영(해든프레스플라워 대표) 강사는 “압화에 많이 쓰는 야생화는 조팝 수국 불두화 등 비교적 꽃잎이 납작하고 작은 형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잎에 수분이 많고 입체적인 장미 같은 꽃들은 누를 때 모양을 잡기 어려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꽃 외에도 사과 무 바나나껍질 나무껍질 등 소재에 제한 없이 질감을 표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단, 식물을 채집할 때는 채집이 금지된 멸종 위기종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양 강사는 압화 부채를 만들다가 매력을 느껴 압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복지관과 학교 등에서 압화 체험 강의를 진행했는데, 참여자 모두 “꽃이 작품이 되니 그저 예쁘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누름판에서 건조된 압화는 선명히 인쇄된 종이꽃 같은 느낌을 준다. 손에 힘을 주면 쉽게 바스러져 다룰 땐 핀셋을 이용하는 게 좋다. 목공용 풀로 붙이면 금세 고정되는데, 이를 활용해 부채 장식품으로 쓰거나 작은 액자에 원하는 모양으로 표현한다. 합성수지인 레진을 이용해 키링 같은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압화를 어떻게 표현할지는 오롯이 창작자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구례엔 압화박물관도

	전남 구례 한국압화박물관(위)을 찾으면 압화 액자 등 국내외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국압화박물관 제공 김미주 기자

압화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한국압화박물관’(전남 구례)이 제격이다. 야생화를 사용한 국내외 다양한 압화 작품을 전시한 박물관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박물관에서는 매년 구례군 주최, 대한민국압화대전위원회 주관으로 ‘대한민국 압화대전’이 열린다. 올해는 지난달 시상식이 열렸고, 당시 수상작을 포함해 600여 점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인근에는 압화체험교육관,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등이 있어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 방문하면 더 좋다.

박물관 바닥 화살표를 따라 관람하면 압화 작품을 놓치지 않고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이끼와 우엉 등으로 표현한 판다가 눈에 들어왔다. 윤기 나는 털이 식물을 말려 표현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일본 금각사와 프랑스의 이삭줍기 등 이국적인 분위기도 풍겨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도 난다.

봄날 떨어지는 벚꽃 비, 달빛을 반사하며 떠오르는 연등, 귀여운 고양이와 두루미 등 손으로 세심히 그린 정밀화 같은 압화 작품이 차례로 이어졌다. 자개와 테이블 위에도 이름 모를 야생화가 꽃 피듯 자리했다.

작품에 사용된 식물 이름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노루오줌풀 개망초 등 다양한 야생화를 찾아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