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그림 인쇄하듯 입히는 기법
- 액자 틀에 천 씌우고 도안 그려
- 미세한 구멍사이 잉크 흘려 표현
- 노래가사·그림·반려견 사진 활용
- 에코백·유리·도자기 등에 찍으면
- 세상에 단 하나 나만의 작품 완성

실크스크린은 미술 시간에 들어봤음 직한 단어다. 천에 글자나 그림을 인쇄하듯 입히는 기법인데 길거리 간판에도 종종 쓰인다. 가장 흔한 실크스크린은 회사 기념일이나 돌 기념품으로 받은 수건에서 찾을 수 있다. 수건에 일자와 어떤 행사를 기념하는지 찍혀 있는 글자를 실크스크린으로 만들어 낸다. 대량 생산이 아닌 취미와 나를 위한 독특한 소품을 제작할 목적으로 실크스크린을 경험할 수 있다. 부산 중구 중앙동의 실크스크린 공방 ‘다:정’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근래는 자연스러움을 살릴 수 있는 식물 모티브가 실크스크린 주제로 많이 쓰인다. 다:정 제공

이다교 강사는 “공방을 시작한 건 5년 전이었다. 당시 실크스크린 업계가 양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컸는데 규모가 줄어든 요즘 관심은 외려 늘어서 신기한 기분”이라고 했다. 함께 일하는 조유정 강사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다가 완성된 작품을 천 위에 남겨서 쓰고 싶어서 시작했다”며 “최근 일러스트레이트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에코백에 찍어 내거나 캔버스에 프린트해 전시회를 하는 형태가 많아지면서 실크스크린이 새삼 주목받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실크스크린은 공판화의 한 종류다. 빈 곳으로 잉크액을 스미게 해 형태를 만들어 낸다. 보통은 금속이나 나무로 만든 액자 틀에 천을 씌운 뒤 스퀴지(고무 밀대)로 잉크나 물감을 판 아래 놓인 소재에 직접 인쇄하는 모든 종류를 칭한다. 틀 위에 붙이는 소재는 비단, 나일론, 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양하다. 보통 공방에선 가장 다루기 쉽고 가격이 저렴한 망사(샤) 원단을 쓴다. 나무 프레임은 천을 고정하기 편리하고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크기로 제작하기가 쉽다. 하지만 오랜 기간 쓰면 틀어져 모양이 이지러지는 단점이 있다.

우선은 틀에 고정된 샤에 감광액을 발라둔다. 감광액은 버킷이라고 불리는 기구로 발라준다. 이 액이 마르는 동안 도안을 그리면 된다. 도안은 반투명한 트레이싱 용지에 선이 잘 표시 나게 그려둔다. 그리고 이걸 감광액을 바른 샤 아래에 두고 감광기를 쬐어준다. 그러면 도안의 선은 광선이 통과하지 못하므로 샤를 씻으면 도안을 구성하는 선만 하얗게 남는다. 그러면 천 가방이나 종이를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샤를 고정한 틀을 올린 뒤 샤 위에 잉크를 부어 스퀴지로 민다. 그러면 감광액이 씻겨나간 샤 원단의 미세한 구멍으로 잉크가 통과해 가방이나 천 위에 묻게 된다.

	자신이 그린 반려견을 에코백에 프린트(왼쪽)하거나 천 위에 프린트한 뒤 솜을 넣어 모빌 장식품처럼 만들 수도 있다. 다:정 제공

프린트용 잉크는 수성 잉크와 졸 잉크로 나뉜다. 수성 잉크는 원단에 바르면 원단의 섬유 짜임 안으로 액이 스며들어 원단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도안과의 이질감이 없다. 하지만 자연건조가 빨라 스크린 판이 금방 막힐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원단 속으로 잉크가 스며들기 때문에 어두운색의 원단에는 색 표현이 어렵다. 반대로 졸 잉크는 공기 중에 노출해도 굳지 않는다. 수성 잉크보다 색이 선명하고 표현도 자유롭다. 하지만 자연건조가 일어나지 않아 드라이기처럼 생긴 히트 건(Heat Gun)으로 뜨거운 바람을 쐬어 잉크를 굳혀야 한다. 발포 잉크를 사용해 프린트하면 볼록하게 튀어 올라와 양감을 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역시 히트 건으로 열 바람을 쐬어 줘야 한다. 수성 잉크는 스크린 판을 물로 씻으면 되지만 졸 잉크는 씻기지 않으므로 전용 세척액으로 관리해 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샤 원단은 실크스크린의 필름 역할을 하는데 원단의 짜임이 성글거나 조밀함에 따라 인쇄의 정밀도가 결정된다. 조 강사는 “보통 섬유에 프린트할 때는 80~220목을 쓰고 수업 때는 150목을 쓴다”고 했다. 목은 구멍의 촘촘함을 뜻하는 말로 숫자가 높아질수록 촘촘하다. 흔히 반짝이라고 부르는 펄이 있는 잉크를 쓰고 싶다면 숫자가 낮은 목을 써야 하고 선이 세밀한 도안의 특징을 잘 표현하려면 목의 숫자가 높아야 한다.

처음엔 프린트할 땐 하나의 색만을 쓰지만 익숙해지면 여러 색을 쓸 수도 있고 색상의 짙고 옅음을 조절해 그러데이션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수강생들은 주로 아이보리색의 아무 무늬가 없는 에코백에 작품을 만들어간다. 가방을 쓰는 내내 자신만의 작품을 사용할 수 있고 내구성도 좋아 오래 쓸 수 있어서다. 이 강사는 “어떤 가수의 팬이 오셔서 다른 팬들에게 선물하겠다며 그 가수의 히트곡 가사를 프린팅해 가셨다. 나중에 들으니 인기 폭발이라 아주 기분이 좋으셨다고 한다. 실크스크린은 ‘덕질’을 위한 취미로도 좋다”며 웃었다. 실크스크린은 도자기나 유리, 철 표면에도 할 수 있어 적용 가능성이 크다면서 ‘자린고비’라는 작품을 보여줬다. 굴비를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한 뒤 모양대로 잘라내 솜을 넣어 인형처럼 만들어서 삼끈에 진짜 굴비를 엮듯 꿰어서 달아주는 장식품이었다. 익살스럽고 독특해서 신혼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인기라고 했다. 이처럼 천에 프린트했지만 그걸 이용해 다른 소품을 만들 수도 있다. 조 강사는 “반려동물과 사는 분들은 사진을 가져오기도 한다. 조심할 점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미지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어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이나 찍은 사진을 활용하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