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이어 일본 특허 등록 마쳐
알약을 삼킬 수 없는 어린이나 중증환자를 위해 알약을 가루로 만드는 ‘파우더링(powdering)’ 작업은 약국과 병원의 불편한 진실 가운데 하나다. 알약을 가루로 만드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미량의 가루 약을 장기간 흡입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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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유 병원장이 자신의 개발한 알약 분쇄기를 작동해 보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봉지째 가루로 빻아져 나오는 약. |
부산 남구 대연동 윌리스요양병원 김태유 병원장(신경과 전문의)은 이런 파우더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장치를 개발해 2014년 10월 국내 특허 등록에 이어 최근 일본 특허 등록까지 받았다. 김 병원장이 개발한 파우더 머신의 정식 특허 명칭은 ‘약 조제 방법 및 약 조제장치’. 간단히 ‘알약 분쇄기(약 산제기, 파우더 머신)’로 불린다.
개념은 간단해도 역발상의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기존 파우더링은 알약을 분말로 만든 다음 약봉지에 아침, 점심, 저녁용으로 다시 나눠 담지만 커피머신 크기의 이 장치는 약봉지 자체를 빻는 원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믹서기나 약사발로 알약을 가루로 만들면 분말이 기구에 달라붙어 정량을 맞추기 어렵고 약 분포도 달라질 뿐 아니라 약 분진도 날린다. 자칫 기구 세척이 완벽하지 않으면 다른 약과 섞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김 병원장은 12일 “약 분진을 지속적으로 흡인하면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해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믹서기로 가는 것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고가의 외국산 장비가 있지만 이 또한 믹서기를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기는 마찬가지. 이번에 개발된 알약 분쇄기는 봉지째 약을 빻아서 흡입, 정량, 세척 같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알약 분쇄기 개발은 병원 특성상 가루약을 많이 쓰는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김 병원장의 현실적인 고민에서 시작됐다. 봉지째 약을 빻는 것은 어찌 보면 흔한 아이디어. 문제는 약봉지가 쉽게 찢어진다는 점. 김 병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프레스로 눌러보고 공구상에서 네일건(못총)을 사서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봉지를 찢지 않고 알약만 깨트릴 수 없을까’. 김 원장은 오랜 고민 끝에 약사발(유발)의 원리에 착안했다. 순간 타격과 그 이후 조금씩 알약을 깨트리는 것. 결국 ‘속도와 힘 조절’이 열쇠이자 알약 분쇄기의 원천기술이다. 시행착오 끝에 시제품을 만들었고 자신의 병원 조제실에서 몇 년째 사용하고 있지만 약봉지는 찢어지지 않았다. 이 개발품은 ‘2016년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에서 은상인 특허청장상을 받았다. 국공립 대학병원 등 국내 100여 곳의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오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