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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기자의 육아뒷담 시즌2 <1> "아유 뭘 이런 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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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난 아들은 부산의 한 어린이집에 다닌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아내는 작은 화장품 두 개를 사 아이 가방에 넣어 보냈다. 앞서 다니던 어린이집에선 못 보던 광경이다. 그 어린이집에선 작은 커피 기프티콘 하나마저 교사들이 수령을 거부했다. 그런데 옮긴 곳 분위기가 그렇지 않더라는 거다. “다른 엄마들이 그러는데, 여기 선생님들은 들어오는 선물 내치진 않는다네?” 아내가 선물을 넣어 보내던 날 슬쩍 보니, 등원차량 안에 부피 큰 선물도 꽤나 있더란다. 조심스레 가방에 넣어 보낼 일도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선물에 아들 이름이나 편지 하나 동봉하는 걸 깜빡 잊었다고 아내가 걱정했다.

이 이야길 듣다 내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1996년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부산 서구에서 사상구 한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중년 남성이던 담임의 이름과 외향, 목소리도 또렷이 기억난다. 그는 모든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발표시키길 좋아했다. 발표자는 담임이 지명했다. 어떤 친구의 발표는 한껏 추어올렸다. 그런데 어떤 애는 발표할 때마다 10살짜리가 감당하기 힘든 모멸을 참아내야 했다. 나는 한 번도 발표자로 지명되지 않았다.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지명당했다. 하필 가장 약한 수학 과목 시간. 칠판에 서 분수 문제를 풀어내야 했다. 담임에게서 떨어질 불호령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문제를 틀렸다. 그런데 칭찬을 들었다. “꼼꼼하게 약분을 잘했고, 마지막 곱셈에서 착오가 좀 있었지만 분수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칭찬이었다. 이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초등 저학년생이 듣기에도 해괴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이 미스테리의 배경을 알게 된 건 대학생 때다. 내 어머니는 직장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을 하는 엄마들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고, 한창 바쁠 때라 엄마는 나를 전학시켜두고 담임에게 인사를 못 했다고 한다. 하루는 어렵게 시간을 내 같은 반 학부모들을 만난 자리에서 엄마는 우리 담임의 학생 사랑은 학부모가 인사 오는 횟수와, 그 인사 때 보여주는 ‘성의’에 달렸단 중대사실을 알게 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아이가 수업시간에 발표자로 지명당해 친구들 앞에서 난도질 당한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자긍심 높은 중등 교사였던 엄마에게, 이 이야기는 직업적 자괴감과 아들 걱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충격적 소식이었을 거다. 아무튼, 엄마는 봉투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런 대형 범죄(?)를 기도해보는 건 처음이어서,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엄마는 그 봉투를 월간지 사이에 끼워 가져갔고 담임에게 전했다. 이후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이 이야기를 동료 교사에게 했더니 “월간지에 넣어서 준다는 건 매달 성실한 상납을 맹약하는 ‘업계의 룰’이라는 걸 몰랐더냐”는 핀잔이 돌아왔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매달 그자를 만났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분명하게 답해주지 않았다. 내 초등 3학년이 순탄했던 걸 보면 본의 아닌 ‘매달 상납’의 약속은 지켜졌을 가능성이 높은 거 같다.

퇴근했더니 아내가 담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요컨대 “뭘 이런 걸 다, 감사하다”는 답례인사였단다. 아내의 걱정과 달리 가방에 넣어 보낸 선물의 취지가 바래진 않은 모양이다. 1996년으로부터 25년이 흐른 2021년 스승의날 풍경을 곱씹는다. 금정구의 가정어린이집연합회에서는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지역 아동 행복을 위해 써달라”며 기탁하기도 했고, 부산진구의 한 학부모는 ‘스승을 향한 성의’가 잘 전달된 데 안도한다. 이 시점 부산지역에서 어린이집에 다님직한 5세 미만 인구는 9만4765명. 25년 뒤 학부모가 될 이들 중 일부가, 그때도 스승의날에 맞춤한 적절한 성의 표시를 고민해야 할지 궁금하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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