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데헌’ 국내 최초 싱어롱 상영
- 가족단위 관객 응원봉 들고 호응
- ‘철서구’ 휴식 포함 11시간 관람
- 김밥 등 챙겨 캠핑하듯이 즐겨
- 밤샘 시청 ‘미드나잇 패션’ 성황

“영원히 깨질 수 없는, Gonna be, gonna be golden!”

극장에서 관객들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을 떼창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좌석에서 춤추는 이들까지. 마치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은 소음을 금기로 여기는 극장에서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첫 주말 영화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이색 상영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펼쳐졌다. 넷플릭스 콘텐츠 최초로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싱어롱 상영부터, 무려 9시간 러닝타임의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철서구’, 영화로 밤을 하얗게 불태우는 ‘미드나잇 패션’까지. 그 특별한 현장을 함께했다.

지난 20일 제30회 BIFF 상영작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버전을 가족 모두가 함께 관람한 심임기 씨, 심재원 군, 장하다 씨(왼쪽부터). 김태훈 기자

■BIFF에 울려 퍼진 ‘골든’

지난 20일 오후 8시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국내 첫 싱어롱 상영이 열렸다. 제30회 BIFF가 야심 차게 준비한 특별상영으로,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될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다.

상영관에는 응원봉과 캐릭터 인형, 등장인물의 복장까지 따라 한 팬들이 속속 입장했다. 특히 다른 상영관에 비해 가족 단위 관객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자보이즈’의 멤버 ‘베이비’를 따라 빵모자를 쓴 김주원(7) 군은 “매일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며 춤추고 노래하는데, 오늘은 친구들이랑 같이 부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상영은 내내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유쾌한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진우와 루미가 이별하는 장면에선 “안 돼!” 하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백미는 단연 OST가 흘러 나오는 부분이었다. 초반부에는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 노래가 나와도 머뭇거리며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골든’과 ‘소다팝’ 등 인기곡이 흐르자 이내 분위기가 달아 올랐다. 관객들은 망설임 없이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극장을 콘서트장으로 바꿔 놓았다.

상영 종료 후엔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가족과 함께 극장을 찾은 장하다(42) 씨는 “서울에서 아침 일찍 내려와 힘들었지만 아이와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9시간 대장정 ‘철서구’

같은 날 오전 11시30분 상영한 ‘철서구’는 문장 그대로 ‘하루종일’ 영화를 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산업 개혁의 물결 속에서 중국 노동자와 가족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중국 다큐멘터리 거장 왕빙의 작품이다. 무려 9시간18분(558분)의 압도적인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BIFF에서는 이를 4개 파트(1-1·2부, 2부, 3부)로 나누어 하루 동안 상영했다. 각 파트 사이 부여된 휴식 시간을 포함하면 관람에만 11시간이 소요된다.

관객들은 김밥과 샌드위치, 쿠션까지 준비하며 마치 캠핑하듯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작 당시 만석이었던 객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비었다. 1부 종료 후 자리를 뜨던 가경윤(27·중국 베이징) 씨는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작품이기에 1부라도 극장에서 보고 싶어 일정이 빠듯했지만 티켓을 끊었다”고 말했다. 2부까지 관람한 염성준(41) 씨는 “체력적으로 쉽지 않아 몰입도가 점점 깨졌는데 다음엔 꼭 완주하고 싶다”고 전했다.

상영은 밤 10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났다. 영화가 끝났을 때 객석에는 절반 정도의 관객이 남아 있었다. 완주자인 남혁인(24) 씨는 “워낙 길다 보니 재미가 없으면 도중에 나가려고 했는데 계속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만약 극장 스크린이 아닌 집에서 봤다면 집중력이 흐트러져 끝까지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이것이 극장의 힘 아닐까”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밤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을 찾은 관객들이 제30회 BIFF '미드나잇 패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김태훈 기자

■축제의 밤 수놓은 ‘미드나잇 패션’

BIFF의 묘미인 ‘미드나잇 패션’도 주말 밤을 수놓았다. 이 섹션은 자정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3편의 영화를 연달아 상영한다. 관객들은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커피와 담요를 챙겨와 졸음에 대비하며 ‘영화의 밤’을 즐겼다. 20일 자정 상영을 본 김희원(27) 씨는 “밤새 영화를 보는 건 영화제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기에 즐겁게 참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