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시리즈 등 30여점 선봬
- 아이패드 활용 드로잉 첫 공개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호수의 윤슬은 눈부셨다. 말간 햇살은 공기와 호수를 모두 노랗게 물들였고,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하얀 배는 돛을 올려 항해를 시작했다. 김덕기 작가는 스위스 여행에서 만난 이 장면을 캔버스에 옮겼다. 오직 바람의 힘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 돛단배처럼 힘찬 여정의 출발점에 선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듯 그의 화면은 활기차고 평화롭게 펼쳐진다.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 2022.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김덕기 작가의 따뜻한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Memories of the wind: 바람의 기억’이 부산 해운대구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물 위에 돛단배를 띄운 신작들을 포함해 여행시리즈와 정원(가족) 시리즈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아이패드 드로잉 작품도 공개한다.

이번 신작에서 돛단배와 함께 주요하게 다뤄진 소재는 물이다. 강과 시내, 늪이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란 작가는 풍경을 그릴 때 물 표현을 즐기는 편이다. 이전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게 바다나 호수가 표현되긴 했지만 물을 메인 주제로 전면에 내세운 건 처음이다. 물을 그릴 때에는 보다 생기 있고 풍성한 장면 연출을 위해 윤슬 표현에 집중한다. 작가는 치유와 긍정의 기운이 작품에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순수성의 회복을 소망하며 작업에 임했다.

이전에 선보이지 않았던 시도들도 눈에 띈다. 라인드로잉에 굵직한 터치의 페인팅을 믹스하거나 과감하게 비운 구도, 더욱 다양한 크기와 촘촘하게 중첩된 색점의 표현은 작품의 깊이감을 더한다. 높은 완성도와 디테일의 묘사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작가관이 반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회화에서 색점의 영향력이 중요하듯 라인드로잉에서는 물 흐르듯 한 번의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선의 생명력이 중요하다. 춤을 추는 것처럼 자유롭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유려한 선묘는 아이패드 드로잉과 잘 어울렸다. 디지털의 다양한 펜촉으로 그려낸 의인화된 집, 책을 보고 차를 마시거나 꽃다발을 전하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페인팅의 붓이나 파스텔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