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알렉산드리아’ 등 10편
- 동아대 로스쿨 교수가 조명
- 독재·사형제 저항의식 돋보여

‘밤이 깔렸다’는 ‘소설·알렉산드리아’의 첫 문장이다. ‘소설·알렉산드리아’는 작가 나림 이병주(1921~1992) 선생의 데뷔작으로 꼽히는 중편소설이다. 형법학자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형법학자가 새긴 이병주의 법·문학·삶’을 부제로 한 저서를 냈다. 그 책 제목은 ‘밤이 깔렸다’이다. 저자 설명을 들어보자.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의 이병주 작가 흉상. 국제신문 DB

“나는 ‘소설·알렉산드리아’ 첫 문장을 군사독재로 읽었다. 군사쿠데타와 군사독재가 온 나라를 지배하여 이제 나는 소설로써 복수·분노·자유·희망을 갈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천재 작가의 저항문학이라고 생각한다.…강렬하다. 위대하고 거대한 여정을 알리는 독백이다. 나림에게 그 암울한 현대사가 ‘밤’(夜)이 되었다. 우리들의 운명을 ‘깔렸다’고 표현했다. 야만의 시대를 말한 것이다.”(7쪽)

저자는 형사법 분야 권위자이다. 법률 문장을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가꾸는 저술·비평·대안 제시 활동 또한 으뜸이다. 독일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독일 통일을 연구하고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는 학술 활동도 열심히 한다. 양과 질 모두에서 ‘에너자이저’인 그가 펴낸 ‘밤이 깔렸다’는 문학 영역이며, 문학·법학이 만나는 저서다. 법학자가 이룬 드문 성취다.

왜 문학인가? “이병주 선생 때문이다. 나림의 위대하고 거대한 삶과 예술을 접하고 ‘형법학자가 새긴 이병주의 법·문학·삶’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큰 작가 이병주가 남긴 80종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읽고 분석·정리·기록·종합했다. 그 성과물이 ‘밤이 깔렸다’이다. 형법학자의 이병주 깊이 읽기를 통해 이병주 연구·향유의 새 지평을 열었다.

‘소설·알렉산드리아’ ‘법률과 알레르기’ ‘예낭풍물지’ ‘패자의 관’ ‘겨울밤-어느 황제의 회상’ ‘칸나·X·타나토스’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 ‘철학적 살인’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운명의 덫’. 이들 이병주 작품 10편이 ‘밤이 깔렸다’에서 저자가 소개하고 사유한 텍스트다. 법 정신이 통찰과 온기를 품지 못하면 사회는 각박하고 위험해진다. 법학과 문학의 만남을 실현한 이 책이 반갑다. “나림은 작품에서 극히 수준 높은 법률 지식과 법철학을 보여준다. 정밀하고 치밀하게 풍부한 논의를 펼쳤고 문학에 생생히 반영했다.”(저자)

나림이 1960년대부터 일관되게 내세운 사형폐지론과 관련된 문장이다. “저는 앞으로 사형폐지 운동을 벌일 작정입니다. 저는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2심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형선고였습니다. 그러다가 대법원 3심에서 무기징역으로 바뀌었고 그 후 20년으로 감형된 것입니다. 만일 1, 2심 판결대로 사형당했다면 오늘처럼 여기에서 있지도 못했을 것 아닙니까? 저는 속절없이 살인범으로서 시신에 낙인이 찍힌 채 영원히 고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어머니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형은 어떤 조건에서도 회복 불능이라는 이유만으로 폐지돼야 할 것입니다.”(330쪽·1979년 소설 ‘운명의 덫’ 한 대목)

이 책은 형식 면에서 이병주 작품을 ‘줄거리’ ‘어록’으로 그대로 소개한 비중이 높은데 독자의 좋고 싫음이 갈릴 듯하다. 교열 상태가 고르지 못한 점도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