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남성이 손에 든 밧줄을 바라보고 있다. 전후 사건을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무 것도 없다. 생명을 살릴 수도, 거둘 수도 있는 밧줄을 이 남성은 왜 들고 있을까. 그를 관찰하는 관객을 통해 사진은 과거의 정지된 순간에만 머물지 않고 ‘지속 가능한 현재’의 시간을 갖게 된다.

성지연 작가의 ‘Hood Boy’. BMW포토스페이스 제공

부산 해운대구 BMW 포토 스튜디오는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로 성지연 작가의 ‘유보된 시간(Suspended Moment)’ 전시를 오는 6월 15일까지 개최한다. 유보는 ‘지연’이 아니라 ‘보류’를 의미한다. 사진은 숙명적으로 과거의 시간을 담는데, 작가는 프레임 안에 시간을 박제시키는 게 아니라 “일시적 정지 속 매달려진 순간”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오브제의 이중성에 집중하는 작가는 사진을 통해 친숙한 것과 낯선 것, 현실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의 불확실한 경계와 모호한 상태에 대해 긴장감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초기엔 인물 사진을, 최근엔 ‘얼굴성’을 지닌 신체의 부분, 사물 그리고 자연의 초상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초기 인물 사진은 전통적 초상 사진과 사뭇 다르다. 초상 사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재현’이라면, 그의 인물 사진은 대상의 정보를 모두 덜어내고 비어 있는 존재로 만든다. 모델은 어떠한 스토리텔링에 따라 연기하는데, 이때 포착된 작은 행위와 오브제를 놓고 관객이 다양한 해석을 하면서 사진 속 순간은 ‘시간성’을 확보하게 된다.

얼굴이 없는 신체의 부분이나 사물의 초상은 인물 사진 역시 이중성에 대한 작업이다. 일상적이고 흔한 오브제에서 ‘발견된 오브제’를 찾으며 ‘낯익은 낯섦’이라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하얀 계란을 흰 그릇에 쌓아 올린 사진은 쉽게 깨지지만 딱딱한 껍질을 가진, 또 그 안엔 끈적거리는 내용물이 있는 계란을 흰색이 가진 순수성을 더해 아름답게 담아냈다. 작가는 “팽창할수록 커지는 풍선, 속이 비치는 하얀 레이스 칼라 등 선택한 오브제는 ‘광란의 사랑’에서 앙드레 브르통이 묘사한 ‘베일에 가린 에로틱한 것, 고정된 채 폭발하는 것, 마술이 펼쳐지는 상황 같은 것’으로 정의되는 발작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며 “이 또한 내 작업에 녹아 있는 ‘몰입’과 ‘모호함’의 개념에 대한 확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