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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17> 하창수 평론가의 산문집 ‘책 속을 걷다-통찰의 자취를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생의 물음들, 그 답을 찾아 책 속을 걸었죠”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10-31 19:33:3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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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도 책 끼고 살았던 문학소년
- 다양한 질문들 좇아 평론가의 길로

- 페이지마다 사상가·철학자·저자 등장
- 명쾌한 자문자답 형식의 책 펴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을 때 우리는 장난처럼 이렇게 말한다. 그 말에는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 있을까.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어디고,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건 중요한 질문이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매일 비슷한 일 속에서 살아가는 중간에 불쑥 이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나무를 베고 산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건설현장 앞에서는 자연생태에 대해, 양심과 체면을 버리고 싶을 만큼 돈이 욕심나고 계속 노동인력이 죽어 가는데도 바뀌지 않는 산업현장을 볼 때는 자본주의에 대해, 코로나19를 겪으면서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해 등. 크고 작은 질문들이 끊이지 않고 떠오른다. 일단 그 질문을 붙잡고 생각에 빠지면 밑도 끝도 없이 파도처럼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달려온다. 쉽게 답을 찾아내지 못할 건 뻔하다. 결국에는 “내가 생각한다고 붜가 달라지겠어. 에잇, 몰라”라고 그 질문들을 내던져버린다. 다음에 같은 질문들이 또 찾아오겠지만 말이다.
낙엽 지는 날, 부산 북구 화명동 거리에서 만난 하창수 작가.
이런 주제를 깊이 다룬 책도 있지만, 그 책을 모두 찾아 읽기도 쉽지 않다. 누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눈앞에 책더미가 있고 답을 찾아 갈 수 있는데 무엇부터 펼쳐봐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하창수 평론가의 ‘책 속을 걷다-통찰의 자취를 찾아’를 읽었을 때, 질문과 답을 담은 책을 안내하는 길잡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하창수 평론가를 화명동에서 만났다.

■모든 질문이 공부의 계기

책 속을 걷다-통찰의 자취를 찾아 /하창수 지음 /전망
하창수 평론가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전통찻집을 소개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분위기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자니, 어수선한 세상을 잠시나마 벗어난 기분이었다.

하창수는 195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그는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덕분에 중학교 도서관을 드나들며 마음껏 책을 읽었다. 서울에서 잠깐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길에서 책을 읽었다. 하교길에 그는 매일 교문 옆에 자리를 펴고 책을 파는 월부책장사를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 선 채로 한국문학과 세계명작 등을 읽었다. 10권 쯤 공짜로 읽고, 눈치가 보일 때면 아껴 모은 용돈으로 1권을 샀다. ‘길’에서 ‘책’을 읽었던 소년 하창수는 현재 끊임없이 길을 걷고 책을 읽는 평론가로 살고 있다. 하창수는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문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무크지 ‘지평’으로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 ‘삶의 양식과 소설의 양식’ ‘암벽의 사상’ ‘맞서지 않는 길’ ‘집의 지형’ ‘집의 지층’ ‘길의 궤적’ ‘길의 현존’, 산문집 ‘걷는 자의 대지-길에서 만난 생명들’ ‘걷는 자의 대지2-길과 글 사이에서’ ‘책 속을 걷다-통찰의 자취를 찾아’를 냈다.

“‘책 속을 걷다’를 읽으면서 제가 품고 있던 많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길을 알게 된 기분입니다. 순간순간 많은 질문들이 떠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머리만 복잡해져요”라는 필자의 말에 하창수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자문자답’입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거죠. 답을 찾아 책을 파고들면 공부인거죠.” 그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동안 필자는 자문만 하고 자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책 속을 걷다’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다. 한 페이지에 그토록 많은 사상가 철학자 저자들이 등장하는 책도 드물 것이다. 평론가니까 책도 많이 읽어야 하겠지만, 어떻게 그 책을 다 읽게 됐는지 물어보았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타인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답을 찾아가는 계기였습니다. 그 계기라는 게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닙니다.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느 해인가 집안의 시제를 지내러 고향에 갔는데 집안형이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병풍은 왜 치는 거냐’고요. 그 질문에 답하자면 선조들의 장례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장례식장을 찾는 요즘과는 달리 선조들은 일상생활 공간인 집에서 염습을 하고 입관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공간과 고인의 공간을 병풍으로 나누었습니다. 병풍 저 편은 저승이지요. 타인의 질문이 늘 제게 계기를 줍니다.” 누가, 어디서, 어떤 질문을 해 올지 몰라 늘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걷고, 자문하고, 읽고, 쓰고…

‘책 속을 걷다’에는 우리의 생각거리가 담겨있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소유와 존재’ ‘욕구와 욕망’ ‘존재와 인식’ ‘이론과 실천’ ‘정통과 이단’ ‘성장과 성숙’ 등.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 또 자문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잠들어있던 마음의 강에 물결이 일고,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모든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분이다. 비로소 제대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는 것 같다. 유사 이래 현자들의 질문과 주장과 답을 읽는 동안 생각들이 정리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우등생의 ‘요점 정리 노트’를 운 좋게 받아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기분이랄까. 이런 기분이 활력을 되찾아준다. 이 기분이 필자에게도 ‘계기’가 되어 준다면 좋겠지만,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핑계 같지만 하나하나 다시 책을 찾아 읽기에, 현대인은 너무나 여유가 없다. 진리를 말하는 ‘책의 숲’에 들어섰는데 어디가 어딘지 몰라 발걸음도 못 떼고 있는 사람 앞에 이 책은 등불이며 지도이다.

화명동 거리에서 사진을 찍은 후, 하창수 평론가와 함께 길을 걸었다. 그는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계기’를 잡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안에서 밖으로 나와 길을 걷는 것이 시작이 아닐까. 그래야 궁금한 것이 생길 것 같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야 낯설고 궁금한 것이 비로소 눈에 뜨일 테니까 말이다. 저만큼 걸어가는 하창수 평론가는 또 어떤 질문을 잡고 있을까.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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