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나도스가 고야 그림 보고
- 작곡한 ‘고예스카스 Op. 11’
- 인터미션 없이 연주하는 무대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무대가 부산서 펼쳐진다. 영화의전당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백건우 피아니스트 리사이틀을 2일 하늘연극장 무대에서 연다.

2일 영화의전당에서 독주회를 하는 백건우 피아니스트. ⓒSeongJin Oh

백건우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한지 올해로 65년을 맞았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연주 연습과 연구를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곡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관객과 연주자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번 무대에선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로 꼽히는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Op.11을 연주한다. 이 작품은 그라나도스가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람회를 보고 나서 받은 영감으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페인 사람들의 민족성과 자연, 분위기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야의 그림 속에서 그라나도스가 느낀 스페인의 열정이나 사랑의 감정, 감수성과 함께 그늘까지 담았다.

첫 곡 ‘사랑의 속삭임’은 고야가 당시 스페인 사회의 타락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판화연작 카프리초스와 탈 파라 쿠알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장식음과 기교가 많아 연주하기가 까다롭다. 이어지는 ‘창가의 대화 ’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경쾌하다. ‘등불 옆의 판당고’는 정열적으로 춤추는 모습이 연상돼 무대 한 편에서 무용수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이다. 가장 유명한 곡인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은 발렌시아 지방의 민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동시에 현란한 트릴로 기교를 자랑한다. 이어 고예스카스의 가장 핵심적인 정서인 사랑과 죽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곡 ‘사랑과 죽음 : 발라드’가 연주된다. 작곡가 스스로가 ‘고예스카스’의 모든 작품은 사랑, 죽음과 관련돼 있고 고통과 사랑, 비극적 결말의 감정을 담고 있다고 밝힌 만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가득한 곡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 모습. ⓒLEE WON HEE

‘에필로그 : 유령의 세레나데’에 이어 ‘지푸라기 인형’으로 마무리 된다. 지푸라기 인형은 원래 고예스카스에 포함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고야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고 동명의 오페라 ‘고예스카스’에서 첫 곡으로 사용돼 같이 많이 연주한다. 화가 고야는 소녀 여럿이 사각형의 천 위에 지푸라기로 속을 채운 봉제인형을 올려 두고 각 모서리에서 천을 잡아당기거나 펄럭거려 인형이 위로 튀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노는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을 보고 그라나도스가 영감을 얻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튀어오르는 인형을 연상케하는 경쾌함으로 마무리된다.

백건우는 그동안 슈베르트,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등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해석하는데 집중했다. 2017년에는 10년 만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다시 연주해 국내외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2019년에는 쇼팽의 작품을 다채롭게 해석해 연주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었던 2020년과 2021년 상반기에는 슈만으로 청중을 위로했다.

백건우는 한 작곡가를 탐구할 때 그의 음악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을 엄선하고 프로그램 순서 또한 신중하게 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인터미션 없이 한 호흡으로 연결되는 백건우만의 고예스카스를 감상할 수 있다.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