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라 동천東川 / 박 하



백양산 두루두루 성지곡을 감돌아

양지녘 동평현東平縣 옛 터전을 적시고

엄광산 새벽이슬 실비 단비 다 모아

실팍한 줄기줄기 당감, 가야, 부전천이여

황령산 고루 적셔 밭개나루 田浦로

어허 둥개 막둥이 얼싸 안는 호계천

이윽고 강이 되는 동천의 물길



횟배 앓던 아지랑이 방죽

물난리에도 신명나던 철부지 누이여

수출입국 공장마다 샘솟던 희망

새나라 융단마냥 아스팔트 깔리던 날

콘크리트 뒤주마냥 가둬버린 그 속에

숨죽여 울던 어미 같은 강이여



버들개지는 물이 올라도

마른 젖무덤 쓸어가며

조선의 일월日月인양 키워낸 그 에미여

누구냐, 뒤주 속에 가둔 것도 모자라

하마 신음소리 새나올세라



다시 또 가면의 꽃길을 덧씌우는가

‘괜찮데이, 에미는 괜찮데이’

그래도 한사코 손사래 치는

부산의 큰어미, 동천을 아시나요?



속죄의 심정으로 외치는 주문呪文

뭐 하노 퍼떡 열어라, 동천!(시집 ‘그래도 도시예찬’에서

2015년 촬영한 부산 동천 풍경. 박하 시인은 동천을 ‘부산의 큰어미’라고 했다.동천을 열어야, 동천을 살려야 부산이 산다는 뜻이겠다. 국제신문 DB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부산 사람에게 동천 이야기를 꺼내면 하나같이 아, ‘똥천’이라 맞장구를 쳤다.

동천은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에서 발원하여 동구 범일5동의 남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당감동, 부암동, 부전동, 전포동, 문현동, 범일동 일대를 지나는데 부전천, 전포천, 가야천, 호계천, 견우천, 문현천 등 각종 하천을 합류한다. 이러한데도 하수처리장이 없어 동천이 아니라 ‘똥천’이라 불릴 정도로 수질 상태가 심각했다.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따른 지역개발 영향으로 동천이 하수구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후 상류 지역 대부분을 복개하여 주차장과 도로 용도로 사용하면서 갈수록 하천 오염이 심각해진 것이다. 동천 오염의 심각성은 ‘동천 살리기’ 운동을 통한 노력으로 재생의 꿈을 이루는 듯 했다. 2010년 5월 부산시시 74억 원을 투입해. 북항 해수를 하루 5만ｔ씩 끌어와 광무교 하류 그리고 문현금융단지의 이마트 앞 분수형태로 방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 후 재발된 악취로 ‘똥천’ 오명을 벗지 못한 것이다.

박하 시인이 위의 시를 쓴 2015년 10월에도 ‘동천 재생’ 운동은 진행 중이었다. 건설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가진 박하 시인의 시 쓰기는 좀 특별한 안목을 발휘하는 것 같다. 스스로 “빼어난 자연보다 빼어난 인공人工에 감동하는 시인”이라 자처하는 것도 그렇지만, 부산의 산업화가 동천의 현실에 미친 영향을 낱낱이 짚어내는 전문성이 돋보이는 글은 신뢰성이 남다르다.

열어라 동천’

머잖아 동천에도 시민의 발걸음이 모여들 날이 올 것이다. 수영강 풍경처럼, 온천천의 활력처럼. 옛 ‘동평현’과 ‘밭개나루’를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북항 재개발과 잇는 동천 재생 프로젝트는 부산의 시민에게 새로운 소통의 장을 펼쳐주지 않을까, ‘속죄의 심정으로’ ‘주문呪文’을 외쳐본다.

‘뭐 하노 퍼떡 열어라, 동천!’ 김곳 시인

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