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4주 연속 MBC 드라마만 이야기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는 MBC가 드라마 왕국 자리를 확고히 다지던 시기였다. 80년대 초반 ‘제1 공화국’ ‘야망의 25시’로 시작한 MBC 드라마의 인기는 ‘동토의 왕국’ ‘여명의 눈동자’ 같은 시대극으로 이어졌고, 90년대엔 현재 삶에 기반을 둔 창작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다. 천편일률적이던 원작 각색 드라마에서 벗어나 김수현 박진숙 김정수 정성주와 같은 중견 여류 작가들이 작품성 있는 드라마를 내놓으며 대중적이면서도 삶의 리얼리티에 접근한 한국 드라마 발전기였다.

64부작으로 방영된 주말극 ‘아들과 딸’은 60%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30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할 만큼 인상적인 드라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어 남아선호가 깊게 뿌리박힌 부모 세대와 그 자식 세대인 귀남과 후남. 귀남과 후남의 나이대가 당시 막 대학에 입학한 나와 비슷했고 우리 집도 딸만 넷이었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서러웠던 후남이들은 화병(火病)을 유발하는 장면들에 울고 웃고, 결말에선 나처럼 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의지박약형 인간인 귀남의 이야기는 요즘 말로 사이다가 필요한 고구마 전개였고, 외유내강의 전형이던 후남이 온갖 고초 속에 소설가가 되는 장면은 그 시대 수많은 딸의 대리만족 성공 스토리였다. 후남은 매번 억울하게 양보하고 희생을 강요당하지만 맞서 싸우며 ‘여자이자 작가’로 꿋꿋하게 걸어 나간다. 김희애의 들국화처럼 청초하고 수수한 모습과 조연들의 감초 연기도 화제였다. 술에 취해 개울을 건너며 “아~ 글씨, 홍도야 우지 마라”를 연발하던 백일섭의, 사람 좋지만 무능했던 아버지 역할도 기억나고, 갓김치 사업가로 변신한 막내딸 종말이, 짝사랑을 이뤄낸 성자 역할 오연수, 당시 신인이었지만 곧 충무로의 다크호스가 된 한석규….

요즘은 나이 들어 대접받으려면 딸을 낳으라는 말도 있지만, 그 당시 아들은 부모가 성취감을 맛볼 유일한 희망이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친구 같은 딸, 비행기 태워주는 딸을 넘어 부모 자식 간 관계는 갈등을 봉합하고 소통·신뢰로 지원·육성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아들과 딸’이 보여준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