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전야前夜



　김정호









오늘 밤, 바람은

왜 이렇게 함부로 나불대는지

누운 채 어둠을 조이다

밖이 소란스러워

쉽사리 오지 않는 잠 재워 놓고

베란다로 나와 달님을 마중한다

창틀이 비틀어지도록 달려드는 외로움

하현달만 몇 시간째

한 뼘 하늘에 미동조차 없다가

수시로 문틈을 타고

함부로 내 집 넘나들며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그럴수록 마음 바빠진 나

안방을 열어보니

아내와 반려견 코코는 여전히 동침 중



해심밀경解深密經을 읊조리며

‘그래, 꽃길은 아니었어도

영혼은 팔지 않고 살았으니

그만하면 됐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돌아서니



달님이 싱긋 웃는다





　 시집 ‘핑크라이트’에서

	하현달은 떴다. 퇴직 전야의 하늘에도.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사람에게 일(work)이란, 의식주를 해결하며 목숨을 잇기 위한 기본생계 유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을 통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 형성, 사회경제활동 참여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일의 개념과 방식도 다양하게 변해왔다. ‘자본론’의 저자 칼 마르크스(Karl Marx)에 따르면 인간은 일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사회성을 깨닫는다. 다수는 일이란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라 비관적이지만, 그렇다 해도 사회 참여는 자아실현이며 꿈의 실현이라는 절실한 목표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조기 퇴직하거나 실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떤 분야건 ‘죽겠다’는 시름이 긴 터널 속을 떠돌지만, 그중 가계경제를 책임진 40·50대 가장의 실직 이야기는 벼랑 끝처럼 막막하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요즘 직장인이 체감하는 예상 정년퇴직 나이가 40대 후반이라고 한다. 실직의 불안이 이들뿐이겠는가, 자신의 월급이 가족의 유일한 젖줄 역할을 하는 가장이라면, 직장에서 생활이 파리 목숨 같은 처지라 여겨질 것이다.

퇴직을 앞둔 시적 화자의 고백적 서정시 ‘퇴직 전야 前夜’를 바짝 끌어당겨본다. ‘오늘 밤’이 지나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이하는 일이 낯설고 막막하여 잔뜩 예민해진 화자에게는 늘 불어오던 ‘바람’조차 ‘함부로 나불대는’ 것만 같을 것이다. 늘 부족했던 잠조차 ‘누운 채 어둠을 조’여 봐도 ‘쉽사리 오지 않’아 ‘달님을 마중’해 보지만 허탈한 마음을 달래주는 이 없고 ‘달려드는’ 건 ‘외로움’뿐이다. 자정 넘어 나타난 ‘하현달’은 ‘수시로 문틈을 타고’ 함부로 집을 기웃거리니 불안해진 마음은 ’안방을 열어보‘고 ’반려견과‘ 잠든 ’아내‘를 확인 하고서야 안심이다.

그래도 나약해진 인간 마음을 붙들어 위안을 주는 경전’해심밀경‘을 통해 화자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꽃길은 아니었어도 영혼은 팔지 않고 살았으니’ ‘그만하면 됐’다니, 평생직장의 뒤안길에서 스스로 다독이며 내리는 청렴한 위로에 큰 박수를 보낸다. 오늘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일자리를 향할 수 있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싱긋 웃는 달님’을 그려본다.김곳 시인 misunk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