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까지 도맡았던 워킹맘 저자
- 전구갈기 등 세분해 남편과 거래
- 맡은일 완수토록 책임감 일깨워
- 진정한 인생 동반자로 성장 그려

‘(장 보면서)블루베리를 안 사 오다니 믿을 수가 없네.’ 남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로드스키(저자)는 치솟는 분노와 설움을 참을 수 없었다.

	독박육아, 독박가사로 고통 받는 수많은 여성을 위해 이브 로드스키는 ‘페어플레이 프로젝트’를 고안했다.

이혼한 뒤 생계를 혼자 감당하며 어렵게 산 엄마를 보면서 자랐기에 그의 꿈은 ‘엄마처럼 살지 않고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가 된 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 분명 든든한 조력자이자 좋은 배우자가 될 사람이었다. 둘은 결혼했고 아이도 태어났다. 그러나 저 문자메시지를 받는 순간 로드스키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져 있으며, 엄마와 얼마나 비슷해져 있는지를 깨달았다. 육아와 가사를 도맡다시피 하며 직장생활도 꾸역꾸역 해내는 ‘독박가사’의 길을 당연한 듯이 걷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런 불공평과 불합리에 관한 진실을 공유한 날 밤, 로드스키는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숙녀분들, 지금 남편들 눈에 안 보이거나 그들이 모르는 사이 우리가 하는 일 전부를 목록으로 만들거야.’ 그때부터 그의 페어플레이 프로젝트, 즉 ‘공정한 게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는 집안일의 종류를 적어나갔다. 요리, 청소같이 대충 분류하는 게 아니라 청구서 관리, 전구 갈기, 남아있는 휴지 수량 파악하기처럼 세세하게 나눴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드는지도 기록했다. 가사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므로, 집안 일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계량’하면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생각에서다.

완성된 목록을 두고 남편과 마주 앉았다. 게임의 규칙은 이랬다. 카드 100장에 청소 등 세분한 집안 일을 하나씩 적어넣었다. 부부가 협의하며 이 100장의 카드를 나눠 가진다. 카드를 고르고, 협상하고, 거래한다. 그리고 재점검한 뒤 다시 협상한다. 두 사람은 각각 나눠 가진 카드에 적힌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 “여보, 나 뭐해야 돼? 어떻게 해야 돼?” 묻는 건 반칙이고, 포기하는 건 신뢰를 완전히 저버리는 행위다.

로드스키는 이 게임이 보통의 부부(남녀 상황이 바뀐 가정도 많을 것이다)는 물론, 동성 부부, 관계가 기울어진 룸메이트 등 동거커플 모두에게 유용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부부는 이 게임을 통해 해피 엔딩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 계획을 들은 기혼 여성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말이 쉽네.’ 그러나 이런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했음은 인정해야 한다. 끝없는 대화와 인내가 있었고 규칙을 상기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남편은 진짜 인생의 동반자로 거듭났고, 아이들은 가사는 분담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자란다.

당신의 배우자가 ‘이대로 있으면 편한데 내가 왜?’라는 반응을 보이거나 ‘집안 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라고 게임의 기본적인 전제를 밟아 뭉개는 타입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남은 삶이 지금보다는 여유롭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배우자와 함께 당신도 행복해지고 싶다면, 상대를 게임의 링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나서보자. 누가 아는가. 인생이 달라질지.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