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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 동행 <1> 이병주 문학관, 주민과 만난 날

사람을 사랑한 작가 이병주, 탄생 100주년 앞두고 고향잔치 열렸네

  • 국제신문
  • 선임기자
  •  |  입력 : 2020-11-10 19:27:44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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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넷에 등단해 초인적 집필
- 매달 원고지 1000여 매 써내며
- 27년간 80여 권의 작품 남겨
- 인간으로서 ‘살아있음’ 강조

- 산맥 같은 李작가의 삶 기리며
- 하동 북천 문학관 다양한 행사
- 주민 100명 초대해 술 대접
- 작품 낭송에 애창곡 경연까지

- 언론인으로서의 업적 저평가
- 100주년 맞아 제대로 연구를

작가 나림 이병주(1921~1992) 작품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말하겠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왜 못 놓나? 재미있으니까. 요즘 문학인이나 언론인 가운데 누가 작가 이병주처럼 글로 독자를 끝까지 끌어당기나?

가을이 야물게 익어가던 지난 7일 오후 경남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병주문학관 마당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원래 이병주문학관은 거의 모든 초행자가 ‘왜 하필 여기에 문학관을 지었지?’ 하는 의문을 품어보기로 유명한 곳이다. 좀 외지고 높은 데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찾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이날은 마당이 바글바글하고 시끌시끌했다. 문학관은 펼침막도 내걸었다. ‘2020 지역민과 함께하는 문학큰잔치-작가 이병주가 고향 주민들께 드리는 술 한 잔’. 속으로 외쳤다. “그렇지! 가끔은 이래야지!”

“(2008년 개관한 뒤로) 문학관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잔치 한번 제대로 못 했다. 하동 북천은 이병주 선생께서 나고 자란 고향인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올해는 북천면민 100여 분을 초대해 이병주 작가가 고향 분들께 술 한 잔 대접하는 문학잔치를 마련해봤다.” 이병주문학관 최영욱 관장은 손님맞이로 바쁜 가운데서도 이렇게 덧붙여주었다. “특히 내년 2021년은 이병주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나무 아래서 책을 읽는 작가 이병주 조형물이 이병주문학관의 가을 정취를 더한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작가 이병주의 문학 작품이 미문(美文)은 아닐 수 있다. 꾹꾹 눌러 써서 미감(美感)이 쟁강쟁강거리며 샘솟게 하는 문장은 아닌 경우가 많다. 대신, 그의 문장은 종잡을 수 없다. ‘지리산’ ‘산하’ 같은 대하소설을 읽고 나면 산맥이 휘돌아나가고 큰 강이 흐른 느낌이 남는다. ‘정도전’ ‘허균’ ‘천명’ 등 역사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이 작품 속 역사인물에 거의 ‘빙의’된 것처럼 갈등과 개성을 압축해 잡아낸다. 전설풍의 옛 이야기를 들려줄 땐 구수한데, 긴장감이 살아 있다. 서민과 중산층 일상을 담은 작품은 장면 장면에 은은하고 묘한 정겨움이 깔린다.

‘소설 알렉산드리아’ ‘겨울밤’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쥘부채‘ 등을 비롯해 작가 자신의 극한 체험(일제강점기 학병 시절 목격한 전쟁, 필화 사건에 따른 2년 7개월 감옥 생활 등)을 투영한 작품은 치열하다.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이처럼 종잡기 힘든 작가 이병주의 세계를 간추려보면 거기에는 ‘인간으로서 살아있음’, ‘생기 있음’이 남는다. 이념에 오로지 휘둘리거나 이데올로기에 찌들어 삶(生)을 억압하는 행태를 그는 치열하게 싫어한다.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 생기 있는 생명체여야 한다. 이런 생각이 작가 이병주 특유의 엄청난 독서량, 박람강기(博覽强記), 죽음에 관한 깊은 사색과 만난다. 재미가 다가 아니란 얘기다.

그는 말했다. “인간은 인간적인 사람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이병주 단편소설 ‘겨울밤-어느 황제의 회상’)

■문학관 마당엔 흥이 넘치고

지난 7일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 마당에서 ‘2020 지역민과 함께하는 문학큰잔치’가 열리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작가 이병주가 고향 주민들께 드리는 술 한 잔’ 행사는 ‘인간적’으로 진행됐다. 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대표 김종회)가 주최하고 이병주문학관이 주관했으며 하동군은 후원했다. 이병주 작가도 이런 인간적인 잔치를 바랐을 것 같다.

노래공연과 이병주 작품 낭송에 이어 간략한 문학강연이 두 건 있었고, ‘이병주 선생 18번 부르기 경연’이 이어졌다. 이병주 선생 18번으로 제시된 노래는 ‘해운대엘레지’ ‘황성옛터’ ‘동백아가씨’ ‘검은 상처의 부루스’ ‘심수봉 노래’ 등이었다. 문학관이 자리한 골짜기 주위로 노래소리가 구성지게 오래 울려 퍼졌다. 초대된 북천면민 100여 명은 막걸리와 돼지수육과 떡과 과일을 나눠 먹었다. 문학관 마당이 북적였다. 이 지역 하영제 국회의원, 윤상기 하동군수, 하동군의원들도 찾아와 인사했다.

잔치를 보며 생각했다. 이병주는 산맥 같은 작가다. “…부산 국제신보(국제신문의 전신)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정식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000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 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한길사가 펴낸 이병주 전집 작가 소개 중)

무엇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억누르거나 잡아먹게 두지 않으려고 그는 치열하게 썼다. 그의 정식 데뷔작 ‘소설 알렉산드리아’에 나오는 인물로, 주인공이 알렉산드리아로 가도록 돕는 프랑스인 선원 말셀의 언동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체취를 느끼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독자가 이병주를 다시 읽으면 얻는 게 많을 것이다.

■박경리 연재는 그의 선택?

이병주 동상이 잔치를 하는 고향 주민을 그윽이 쳐다본다.
이날 잔치에서 만난 이병주기념사업회 김종회 공동대표는 “내년 작가 이병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선집을 펴내고 국제학술·문학대회를 여는 등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다행스러웠다.

풀어야 할 과제가 더 있다. 이병주는 국제신문에서 1958년 11월 5일부터 1961년 5월(서류상으로는 7월)까지 일하며 ‘주필 겸 논설위원’으로 활약했다. ‘국제신문 오십년사’에는 “…58년 11월 5일 상임논설위원으로 발령했고, 59년 7월 1일에 주필로 임명했으며, 이어 59년 9월 27일에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발령했다”고 나온다.

1947년 창간한 국제신문이 빛났던 시기로 1960년 마산 3·15 부정선거와 4월 혁명(4·19)이 있다. 당시 국제신문은 지금 봐도 ‘아름다울’ 만큼 국민의 저항과 반독재투쟁을 생생하고 풍부하게 보도했다. 그때 신문 제작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이병주 주필 겸 편집국장이다. 그가 재직하던 1960년 9월 6일 국제신문은 안수길의 소설에 이어 작가 박경리의 ‘푸른 운하’ 연재를 시작하고 같은 해 11월 6일 ‘세기의 작가 펄 벅 여사 초청 대강연회’를 부산여고 교정에서 주최했다. 이런 일련의 행보에서 당시 편집국을 책임진 이병주의 역할이 궁금하다. 평화통일을 구상한 글로 필화(筆禍)를 입어 1961년부터 2년 7개월 옥살이하고 출감한 뒤에도 그는 국제신문에 기명칼럼 등을 꾸준히 기고한다. 그런데 현재 이병주문학관의 ‘이병주 연보’에 “1955년 국제신보 입사”로 나오는 등 불일치와 미진함이 있다.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더 폭넓고 꼼꼼한 연구가 이뤄지기 바란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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