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석탄 찌꺼기·나무 사용
- 길과 지형 등 다양한 모양으로
- 구성원의 삶·역사 상징적 표현
- 내달 5일까지 해운대부민병원

나무를 늘어뜨리거나 구부려 빛과 움직임이 공존하는 3차원의 공간에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갤러리 전시장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길과 지형의 모양을 표현한 선들은 곡선이고 리듬감이 느껴지며, 선들이 만든 공간은 감성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관람객은 작가가 창조한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공간과 시간, 입체와 평면이 혼재된 작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해운대부민병원 1층 PROJECT B6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내걸린 작품 앞에 선 정혜련 작가. PROJECT B6 제공

설치 미술 작가 정혜련(42)이 부산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부민병원 1층 PROJECT B6에서 개인전 ‘-1의 풍경’을 열고 있다. 지난 6개월간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는 그 결과물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이자 작품명인 ‘-1의 풍경’은 삶을 수직선에 비교해 우리의 삶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간과 기억, 역사를 ‘-1’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정 작가는 그동안 사람들이 만든 길, 지형의 모양, 구성원들의 삶과 역사, 문화의 흔적들을 공간 드로잉으로 표현해왔다. 지난해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전에서는 LED로 미술관 동서를 가로지르는 낙동강을 은유한 작품을 출품해 주목을 받았다.

	정 작가의 평면구조물.

이번 전시에서는 추상적 시간을 품은 대형 설치 작품과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인 지층과 같은 평면 구조물 등을 선보인다. 정 작가는 거대한 탄광촌인 프랑스 발랑시엔에서 가져온 흙, 석탄 찌꺼기, 벽돌 가루, 나무 등을 소재로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 지역의 시간과 역사가 담긴 재료가 켜켜이 쌓인 모습은 현재를 지탱하는 시간의 지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 작가는 “발랑시엔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광산 찌꺼기로 만들어진 인공 산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발끝에 닿는 작은 알갱이들은 그곳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으로 다가왔다. 인공 산과 인공 호수를 보면서 인간의 삶과 지형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고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새로운 재료를 만나고 습득하는 일에 탐닉한다. 그는 “재료의 물리적인 힘, 움직임을 작품에 담는다”고 했다. 전시에 사용된 재료들은 모두 시간을 담은 흥미로운 재료로써, 그것을 결합하고 만들어가는 순간은 마치 작가가 시간의 연금술사가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부산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정 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외 미술계의 조명을 더욱더 많이 받고 있다. 2008년 하정웅청년작가상을 받았고, 2012년 김종영미술관의 ‘올해의 젊은 조각가’로 선정된 데 이어 2017년 제1회 수림미술상을 수상했다. 일본과 프랑스에서도 전시를 열었다. “사람들과 예술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함으로써 예술을 끊임없이 향유하고 싶다”는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전시는 다음 달 5일까지. (051)602-8196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