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동·안성기 등 대거 참석
- "영화제에 결혼자금 털어넣은 친구"
- 고인과의 추억 떠올리며 애도

"지석, 영화제 기간이 아닐 때 부산에 놀러오겠다는 약속을 이제야 지키는데 계시질 않네요. 대만 영화인들은 특히 당신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마음 깊이 갖고 있어요. 당신은 떠났지만, 그 정신은 남을 거라 생각합니다. 피곤하셨을 텐데 편히 쉬세요, 많이 사랑합니다."

	2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BIFF)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영결식에서 영화인들이 헌화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대만 배우 양귀메이 씨는 추도사를 채 잇지 못했다.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흐느낌이 영결식장을 메웠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그토록 사랑하던 부산국제영화제와 가족, 그리고 같은 꿈을 꾸었던 동료들과 영원히 작별했다. 생전 영화인들과 친구처럼 지냈던 김 위원장이었던 만큼, 참석자 대부분은 고인과의 크고 작은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겼다.

29일 정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BIFF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이창동 감독, 안성기 배우 등 BIFF와 인연이 깊은 영화계 인사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국내외 영화인과 그를 기억하는 조문객 300여 명이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오후 칸 국제영화제 참석차 방문한 프랑스 칸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고인의 장례는 부산국제영화제장으로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치러졌고, 이날 발인해 부산추모공원에 영면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배우 안성기 씨.

영결식은 생전 김 위원장이 영화에 대해 품었던 열정과 꿈을 확인한 자리였다. 막역한 친구인 오석근 영화감독은 "김지석이 어느날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들자 했다. '가능한 일이겠냐'고 미친놈 취급을 했다. 나는 결국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장을 맡으며 함께 준비했는데, 돈이 없어 김지석의 결혼자금을 모두 털어 넣었다"고 회상했다. 오 감독은 "김지석은 아무도 관심 없던 '아시아 영화'의 즐거움을 알리는 데 애정을 쏟았다. '영화도시 부산'을 만들기 위해 아시아 최초 부산영상위원회를 기획했다. 영화제와 부산 영화의 발전에 김지석은 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해 왔고, 최근 몇년 간은 BIFF의 자유를 위해 온몸으로 버텼다"며 "이용관 전 위원장의 마지막 항소심이 있던 날 부고를 들었다. 탄압에 대한 실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친구가 부디 천국에서는 편히 쉬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김 부집행위원장의 아들 세현(21) 씨는 "어릴 때부터 좋은 영화가 나오면 극장에 데려가 보여주시고 몇 시간 동안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 덕분에 일곱 살 이후 영화인의 꿈을 바꾼 적이 없다. 아버지는 언제나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100세까지 사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훌륭한 영화인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 하늘에서 좋아하는 영화 마음껏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IFF 김동호 이사장,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 임권택 감독 등도 추도사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