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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해 고전을 만나다 <15> 진보의 얼굴

황제 10명을 모신 '풍도(中 오대시절 재상)'보다 염치없는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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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5-08 19:56:1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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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 동상(중국 하북성 창주시 소재 창주명인식물원)
- 중국이 혼란을 겪던 오대시절
- 왕조는 가문일 뿐이란 변명아래
- 주군을 밥 먹듯이 갈아치워

- 목적을 위해 수단 가리지 않는
- 비례대표 공천 과정의 부정
-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인 안돼

"관중은 이런 말을 했다. '예절 정의 청렴 염치는 나라를 지탱하는 네 갈래 밧줄이다. 밧줄이 팽팽하지 않으면 나라는 곧 망한다'. 참 좋은 말이다. 예절과 정의는 정치의 큰 법도이고 청렴과 염치는 사람 노릇의 큰 범절이다. 청렴하지 않으면 아마 닥치는 대로 가지려 할 것이고 염치가 없으면 아마 무슨 짓이든 저지를 것이다. 이러면 보통사람에게도 재앙이 닥치고 망할 텐데, 하물며 고위 공무원이 그렇다면 어지럽지 않을 천하, 망하지 않을 국가가 있을까. 풍도는 염치가 없는 놈이라 할 만하고 당시 천하와 국가의 형편도 알 만하다." (구양수 '신오대사'의 '잡전'에서)

■문제적 인물이 역사를 쓰다

'문제적' 인물 구양수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산문 작가의 한 사람이고 역사 편찬자, 유명한 서예가, 노회한 정치가이기도 하니 말이다. 송나라 초기의 정치 상황에서 그는 사마광 등과 더불어 지주 관료의 처지를 대변했다.

당나라 후기부터 약해진 국가에 봉사하기도 했지만, 국가에 대항하는 절도사 등 무신의 참모로 활약하면서 성장한 사람들이 지주 관료이다. 처음에는 이들도 이전의 귀족이나 무신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뒤부터 급격히 보수화된다.

오늘 처지에서 보자면 당시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보수는 국가로부터 사회를 지키자는 쪽이고 진보는 오히려 국가를 지키자는 쪽이었다. 국가를 옹호한 사람들이 신법당인데, 구양수처럼 위대한 시인의 하나인 왕안석이 대표적 정치가이다. 신법당이란 이름은 이들이 새로운 법을 여럿 제정한 데서 나왔고 구양수 등 보수파는 덕분에 구법당이란 소극적 이름을 차지하게 된다.

몹시 당파적이던 구법당은 국가의 편에 선 신법당을 겨냥한 여러 가지 의제를 개발한다. 그들의 의제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나 구양수의 '신오대사' '신당서' 같은 역사책 형태로 많이 발표됐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 새로 쓰기'라는 고전적 수법은 유래가 깊다.

송나라 직전 '오대'는 채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중원에서 다섯 왕조, 그 바깥에서 열 개 나라가 교체될 정도로 정신없는 시대이다. 왕조의 덧없음을 실감한 오대의 역사는 중국 전통에 따라 송나라 태조의 명령으로 이미 편찬된 적이 있다. 구양수는 여기 불만을 품고 지주 관료가 국가에 우선한다는 입장에서 오대의 역사를 새로 쓴다.

■네 왕조서 열 황제를 모신 풍도

구양수 석상(중국 안휘성 저주시 소재 구양수기념관).
국가보다 사회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구양수는 인간의 본성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오대의 인물을 평가할 때 그는 청렴과 염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혼란이 극에 달한 오대 때, 신하는 자기 임금을 시해하고 아들은 자기 아비를 시해한다. 그리고 벼슬길에 오른 선비들은 국가에서 봉급 받는 것만 편안하게 생각했는데, 청렴과 염치의 얼굴을 회복하지 못한 놈들이 조정에 가득했다." ('송사'의 '구양수전'에서)

구양수가 볼 때 파렴치한 오대의 인물 가운데 최악은 풍도이다. 오죽하면 '잡놈들의 전기'라는 뜻을 가진 '잡전'에 그를 기록했을까. 의심스럽거나 확실치 않다는 뜻에서 풍도도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심지어 거란족이 세운 후진까지 포함한 네 왕조에서 벼슬을 살았고 황제를 열 명이나 모셨다. 아니, 황제를 열 명이나 갈아치웠다고 하는 쪽이 옳을지 모르는 사람이다.

풍도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모범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지만, 과연 그에게 영혼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가 이런 엄청난 경력을 쌓게한 데는 내력이 있다. 그는 당나라 말기 유수광 부하로 공무원 경력을 시작했다. 유수광이 쓸데없이 전쟁을 벌이려고 하자 직언을 했고 그 바람에 감옥에 갇힌 적이 있다. 그는 거기서 왕조 교체도 가문의 변천일 뿐, 국가는 여전히 지속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구양수가 풍도를 부정적으로 본 것은 오해이다. 구양수가 '천하'라고 표현한 지주 관료 사회나 풍도가 생각한 국가 틀 속의 사회는 별반 다르지 않은 탓이다. 송나라 태조 때 편찬한 본래 '오대사'의 지은이가 풍도를 긍정적으로 공감한 것은 어쩌면 이런 눈치를 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풍도의 실천에는 옛사람의 기풍이 상당히 많았다. 풍도의 넓은 도량은 대신의 예절을 깊이 얻었다. 그래서 왕조를 넷이나 섬기고 황제 여섯 명의 재상 노릇을 했어도 충성을 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아비를 둘만 섬겨도 불행한 여자라고 하는데 하물며 곱절, 세 배나 되면 어떤 지경이겠는가. 그러므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문정공이니, 문충공이니 하는 시호를 받지 못한 것은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구오대사'의 '풍도전'에서)

■얼굴의 윤리

최근 '진보'의 이름을 내건 정당이 비례대표 공천 과정의 부정 시비로 시끄럽다. 오늘의 소위 진보가 국가보다 사회를 앞세우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행동은 국가의 실정법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용인될 수준 이하이기 때문이다. 구양수뿐 아니라 풍도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잘못이다. 목적이 끝이 아니라 사실 시작이고 수단을 정당화시키지도 못한다는 점을 그들은 잘 잊는다.

요즘 이들의 '얼굴'이 화제에 오른 점이 흥미롭다. 진보정당의 공동 대표를 맡은 이는 '예쁘장한 얼굴', 사퇴를 거부한 비례대표 2번은 '비로소 얼굴을 드러낸' 비밀조직의 숨은 실체, 역시 사퇴를 거부한 비례대표 3번은 '얼짱녀'이다.

"얼굴의 정직함이 있다. 숨김없이 얼굴을 드러낸다. 얼굴의 살갗은 발가벗었고 헐벗은 채로 있다. 깔끔하긴 하지만 여하튼 발가벗었다. 그리고 헐벗었다. 얼굴에는 가난이 깔렸다. 얼굴은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 마치 폭력을 저지르도록 우리를 끌어들이는 듯하다. 동시에 얼굴은 우리의 살인을 금지한다." (레비나스의 '윤리와 무한'에서)

얼굴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남의 얼굴이 헐벗은 하느님의 얼굴이라고 한다. 마치 동학의 '시천주'처럼, 그래서 그는 남을 환대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오늘 진보의 얼굴은 환대받을 만한 헐벗은 얼굴인가. 두꺼운 낯가죽을 통해 나오는 그들의 말도 전달되지 않는 웅얼거림이긴 마찬가지다. '얼굴로 나아가는 것' '얼굴과의 관계'가 윤리라고 말한 레비나스의 뜻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홍 중인 진보정당이 정녕 미래 권력이 되려 한다면 노년에 들어서야 정치를 발견한 칸트의 이런 충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악마의 종족이라도 오성만 가지고 있다면 국가를 조직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자기 보존을 위해 보편적 법칙을 요구하는 다수의 합리적 존재들이 각자 비밀리에 자기만 보편적 법칙에서 예외가 되려는 경향을 보일 때, 그들의 사적인 의도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서로 감시하도록 하며 결국 그들의 공적 행위가 마치 비밀스러운 사적 의도가 있지 않은 것처럼 만드는 방식으로 헌법을 수립하는 것이 문제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 두 가지 '오대사'가 생긴 내력은

- 구양수의 '신오대사'를 국가가 채택

오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 '오대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송나라 태조 조광윤이 설거정에게 편집 책임을 맡긴 것이고 하나는 구양수가 개인적으로 지은 책이다. 구양수가 지은 오대 역사책의 본명은 '오대사기(사진)'이다. 국가에서 '오대사기'를 채택하자 설거정의 '오대사'는 사라지고 '오대사기'가 '오대사'로 제목을 바꿔 행세하게 된다.

명나라 때 만든 백과사전 '영락대전' 등에서 가려 뽑은 설거정의 '오대사'를 나중에 복원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설거정의 것을 '구오대사', 구양수의 것을 '신오대사'라고 부르며 구분하게 된다. 구양수는 청렴과 염치라는 인물 평가의 기준도 있었지만, 공자가 편집했다는 '춘추'를 역사 기술의 모범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신오대사'는 유학의 기준에 따라 지은 역사책이다.

임형석 고전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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