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 동창 통해 알게된 ‘그 놈’
- 연 200만 원 벌게 해주겠대요
- 다짜고짜 제 명의로 대출 내곤
- ‘좋은기회’라며 지인도 엮었죠
- 6000만 원 잃은 사람도 있어요
- 월급 절반 대출이자로 내 막막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합니다. 순간의 실수로, 뼈 빠지게 일해 번 돈이 절반 넘게 대출 이자로 나가고 있어 막막합니다.”

A 씨에게 사기를 당한 공장 노동자 B(20) 씨의 토로다. 2019년 2월 부산공고를 졸업한 B 씨는 졸업 전 부산 사하구의 한 공장에 취업한 상태였다.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그가 버는 월급은 세후 280만 원 상당. 갓 스무 살 나이에 많은 급여를 받는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물정 모르는 사회초년생이기도 했다. A 씨가 공장에 취업한 지 6개월 이상 된 이들을 노리는 것 또한 이들이 ‘깨끗한’ 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속이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B 씨에게 A 씨를 소개한 사람은 고교 동창. 그는 “처음엔 전화 통화였다. 정부 청년지원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1년 만에 100만~200만 원을 벌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첫 만남에서 A 씨는 교통비라며 B 씨에게 3만 원을 건넸다. B 씨는 설명을 들은 뒤 “연락하겠다”며 돌아가려 했지만 A 씨는 “시간이 없어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당장 하는 게 좋다”며 휴대전화에 경남은행 앱을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B 씨는 “개인정보를 입력하자 A 씨가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헤어진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3000만 원이 대출돼 A 씨에게 송금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A 씨는 수개월간 B 씨의 대출 이자를 대납했고, “자리가 추가로 났는데 소개해 줄 지인이 없느냐”고 요청했다. B 씨는 “이자까지 내줘 완전히 믿고 있는 상태였다. 사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지인들을 소개해줬다”고 털어놨다. 이어 “주식·코인 등 ‘일확천금’ 사례를 접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불안감을 늘 느꼈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내게도 좋은 기회가 왔다’고만 여겼다. 크게 후회된다”고 토로했다.

다단계처럼 지인을 끌어들이게 하는 수법은 피해자들에게 ‘족쇄’가 됐다. B 씨는 “동창과 직장 동료들 사이에 A 씨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더니 소개해주거나 소개받은 사람들의 돈까지 모두 날려버리겠다고 압박했다”며 “내 돈은 물론 남의 돈까지 잃게 할까 봐 신고하지 못했다. 오히려 저축은행 등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줬다”고 말했다.

강서구의 공장에서 일하는 C(20) 씨도 같은 수법에 당했다. 그는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A 씨가 직장까지 찾아와 끈질기게 설득했다. C 씨는 “공장에 찾아와 ‘선금’이라며 50만 원을 건넸다. 멋모르고 받았는데, 나중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니 50만 원보다 훨씬 더 큰돈을 물어내야 한다고 압박해 대출을 내줬다”고 했다. 피해액은 6000만 원에 달한다.

그는 사기를 당한 사실을 어렵사리 부모에게 털어놓은 끝에 사상경찰서에 A 씨를 고소했다. C 씨는 “가족이나 주변에 알리지 못해 A 씨를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도 많다. A 씨가 붙잡히면 정말 모든 돈을 잃을 수 있을 거라 걱정한 것”이라며 “당하고 보니 비슷한 수법에 내 또래 노동자, 학생들이 얼마든 더 속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청이나 학교 차원에서 이런 피해가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