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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 편집국장 신문은 지식의 숲 1] 슬기로운 ‘슬세권’ 생활과 거리두기

  • 국제신문
  • 권영미 기자 kym8505@kookje.co.kr
  •  |  입력 : 2021-04-10 0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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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은 지난 2월 17일 자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로컬 크리에이터를 찾아서’ 기획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일상을 바꿔버린 코로나19로 인해 소중해진 동네, 골목의 가치를 재조명하자는 취지입니다. 소박한 골목과 동네가 일생생활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2월 17일자 로컬크리에이터 1면 기자. 로컬크리에이터 기획기사 1회

●동네의 재발견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하고, 장을 보더라도 대형 마트보다 집 근처 슈퍼마켓 재래시장 편의점을 선호하다 보니 자기가 사는 동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소비가 집을 기준으로 반경 500m 이내 동네 가게와 음식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홈 어라운드 소비’. 카카오 모빌리티가 발표한 2020년 2~6월 편의점 방문 비율을 보면 전년 동기보다 4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다닐 만한 거리에 있는 ‘슬세권(슬리퍼+세권)’이 새삼 뜨고 있습니다. 슬리퍼 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부산항 북항 재개발사업을 제안했을 당시 “시민들이 언제든지 슬리퍼를 신고 북항에 가서 놀 수 있도록 (친수공간 위주로) 만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북항 재개발지역은 과거 부두로 사용돼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온 보안구역인 만큼 시민에게 되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입지와 관련해 슬세권 이외에도 지하철(도시철도)이나 기차역을 중심으로 500m 반경(도보로 5~10분) 안팎의 역세권을 포함해 ▷학세권(초중고교가 밀집해 교육 여건이 우수한 곳) ▷숲세권·공세권(숲이나 공원 같은 쾌적한 자연환경이 근처에 있음) ▷스세권(스타벅스 커피숍이 근처에 있음) ▷맥세권(패스트푸드 맥도날드 매장이 근처에 있음)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적·심리적 거리두기

 코로나 시대에 주목받는 거리는 2m입니다.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타인과 2m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2m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튀어나오는 미세한 타액방울(비말)은 2m가량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비말의 크기는 5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 분의 1m) 이상으로, 보통 기침을 한 번 하면 약 300개의 비말이 전방 2m 내에 분사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뿐 아니라 타인과 심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사람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혜남이 쓴 『당신과 나 사이』(메이븐)를 읽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는 거리를 찾는 법’이라는 부제처럼 상처 주기도 싫고 상처받기는 더 싫은 사람에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게 이 책의 요지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
 그렇다면 사람 간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얼마나 두면 될까요? 저자는 ▷가족과 나 사이 20㎝ ▷친구와 나 사이 46㎝ ▷회사 사람과 나 사이 1.2m라고 제시합니다.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미국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분석을 참조한 겁니다. 에드워드 홀은 자신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인간의 공간 사용법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첫째, 밀접한 거리(Intimate Distance Zone)는 0~46㎝로 사랑을 나누고, 맞붙어 싸우고, 위로해 주고, 보호해 주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는 거리를 말합니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서로 친밀도가 가장 높은 관계에서 나타나는 거리여서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이 불쑥 이 거리를 침범해 들어오면 사람은 움츠러들고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즉 자가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거리이므로 함부로 침범해서는 곤란합니다. 둘째,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 Zone)는 46㎝~1.2m로 서로의 팔 길이 만큼의 사이를 뜻합니다. 손을 뻗으면 상대방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셋째,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Zone)는 1.2~3.6m로 지배의 한계를 넘어선 거리입니다. 특별한 노력이 없는 한 상대방과 닿지도 않고 그럴 기대조차 하지 않는 거리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사무적이고 공식적인 성격을 띱니다. 회사 사무실이나 넓은 공간에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둔 소그룹 회의나 모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넷째,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Zone)는 3.6~7.5m로 개인과 대중 사이 거리로 과장된 목소리와 함께 몸짓이나 자세 같은 비언어적 의사 전달수단이 요구됩니다. 교사와 학생, 강사와 청중 사이의 연설이나 강의 등에 필요한 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그와 당신이 서 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간격은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면 혼자 있어도 행복하고, 함께 있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가?”(『당신과 나 사이』 67쪽)

 코로나 시대에 슬기로운 동네 생활과 함께 사회적 및 심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오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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